집합건물의 관리와 운영은 단순히 한 건물 내부의 청소나 시설 점검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구분소유자 전체의 재산권 보전과 생활환경 유지라는 공익적 기능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법리는 항상 절차적 정당성과 다수 구분소유자의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2023카합50407)가 선고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결정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관리위원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은 관리업체 계약 해지는 무효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사건 개요
문제의 건물은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가 혼합된 대규모 주상복합 건물로서 사용승인 시점부터 전문 관리업체가 전체 관리업무를 담당해 왔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주동과 비거주동 사이에서 관리주체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됐다. 특히 2022년 무렵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별도의 결의를 통해 기존 관리업체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그 이후로는 오피스텔 및 상가 부분을 중심으로 한 비거주동 관리위원회와의 계약만이 존속하게 됐다. 그런데 일부 구분소유자들이 임시 관리단집회를 소집해 관리업체 변경과 기존 계약 해지를 결의하고 나아가 새로운 관리인을 선임한 뒤 기존 관리업체 직원들의 출입을 제한하며 업무 수행 자체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분쟁이 가처분 소송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기존 관리업체인 채권자는 자신들이 여전히 유효한 계약에 근거해 정당하게 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단 측이 절차적 하자를 가진 관리인 선임, 구분소유자 동의 부족에 따른 집회 소집하자 의결정족수 미충족, 나아가 관리위원회 결의 없는 계약 해지라는 중대한 흠결을 안은 통보를 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러한 해지 통보는 무효일 뿐만 아니라 계약기간 동안 관리업무 수행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관리단과 일부 구분소유자들이 사실상 출입을 봉쇄하고 업무수행을 방해하고 있으므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통해 긴급히 권리를 보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여러 쟁점을 검토하면서 먼저 관리인 선출 방법과 관련해 관리규약에 별도의 정함이 없는 경우 관리인은 관리단집회의 결의로 선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채권자의 주장을 배척했다. 또한 관리단집회의 소집 요건 역시 전체 구분소유자 390명 중 144명의 동의가 있었으므로 법정 요건인 5분의 1을 충족했고 통지가 하루 지연됐다는 사정만으로 결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비거주동만을 위한 별도 관리단이 성립·운영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전체 구분소유자를 기준으로 한 의결정족수가 충족되면 족하다는 점에서 채권자의 이 주장도 배척됐다. 그러나 법원은 관리업체와의 계약 해지 및 변경은 집합건물법 제25조 제1항에서 정한 공용부분 관리행위에 해당하고 이는 집행 과정에서 반드시 관리위원회의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 사안에서는 그 절차가 생략됐음을 중대하게 봤다. 결국 관리위원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은 관리업체 해지 통보는 위법하여 효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소결
이번 결정은 단순히 특정 건물의 관리권 다툼을 넘어 집합건물법이 예정하고 있는 절차적 장치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금 확인해 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즉 구분소유자 다수의 의사가 모였다 하더라도 법률이 요구하는 관리위원회의 결의 절차를 생략한 채 관리업체 계약 해지를 시도한다면 이는 집합건물 관리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하는 것으로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집합건물법이 관리위원회 제도를 둔 것은 다수결 원칙의 이름 아래 소수 구분소유자의 권익이 침해되는 것을 막고 관리 운영 과정의 합리성과 절차적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결정은 그 입법취지를 충실히 구현한 사례라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건물 관리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구분소유자 모두가 법과 규약이 정한 절차를 존중하고, 관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운영적 보완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결정은 그 점에서 향후 집합건물 관리 실무에 중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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