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건물의 관리단 운영에서 구분소유자들의 의사를 어떻게 모아내고, 그 절차가 법적으로 유효한 결의로서 인정될 수 있는지는 실제 분쟁에서 가장 첨예하게 다퉈지는 쟁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분양 초기 단계에서 분양자와 관리계약을 체결한 관리업체가 관리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리단이 새로 관리인을 선임해 관리권한을 행사하려 했으나 기존 업체가 구분소유자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다시 관리권을 행사하려 한 사안에서, 법원이 전자투표 시스템을 통한 합의 절차의 효력에 관해 중요한 판단을 내린 사건이 있었다. <수원지방법원 2023카합10151>

▲사건 개요
관리단은 2022년 11월 12일 개최된 관리단집회에서 구분소유자인 채권자를 관리인으로 선출하고 공용부분 관리권을 위임하는 결의를 했으며 그 이후에도 기존 관리업체인 채무자가 계속 관리업무를 수행하자 관리단은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인용 결정을 받아냈었고, 법원은 “이미 관리단 결의로 관리권이 관리단으로 이전됐으므로 기존 관리업체는 더 이상 관리업무를 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확인해 줬다. 그런데도 채무자는 선행 가처분 결정 이후에 다시 구분소유자들의 5분의 4 이상이 찬성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관리인으로 선임됐다고 주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용된 방식이 바로 개별 서면결의서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한 전자투표 시스템을 활용한 절차였으며, 채무자는 이를 통해 관리인 교체 안건에 구분소유자 다수가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집합건물법 제41조에서 정한 서면 또는 전자적 방법에 의한 합의 요건을 충족했는지가 핵심이었고, 법원은 여기서 “전자적 방법”의 의미를 집합건물법 시행령 제13조의 규정에 따라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시행령은 전자적 방법이란 전자서명법상 실지명의를 확인할 수 있는 전자서명 또는 인증서를 통한 본인 확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또는 관리규약에서 완화된 본인 확인 절차를 허용한 경우에만 다른 방식을 인정한다고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문자메시지로 URL을 보내고 수신자가 접속해 이름을 입력하고 찬반을 표시하는 방식은 본인 확인 절차를 담보할 수 없으므로 법에서 정한 전자적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원은 채무자가 제출한 감사 추적 인증서에조차 투표자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등 실질적 본인 확인 정보가 기재돼 있지 않아 이를 통해 구분소유자의 실지명의가 확인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으며, 또한 채무자가 주장한 “전자문서법상 전자문서”로서의 효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합건물법은 서면 합의와 전자적 합의를 명확히 구별하고 있고, 전자문서를 서면 합의로 인정하려면 관리규약에서 별도의 근거를 둬야 하는데, 해당 건물 관리규약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전자문서법 규정을 근거로 전자투표 문서를 서면 합의로 볼 수는 없으며 집합건물법이 요구하는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하는 이상, 관리인 교체 합의는 무효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결국 법원은 전자투표를 통해 확보된 찬성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5분의 4 정족수를 충족할 수 없다고 봤고 따라서 채무자가 자신을 관리인으로 선임했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으며 채권자가 관리인으로서 권한을 유지한다는 점이 소명된다고 판단해 채무자가 관리인 직무를 집행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을 인용했다.

▲소결
이번 결정의 의미는 분명하다. 최근 관리단 운영에서 구분소유자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법원이 보여준 태도는 법적 안정성과 본인 확인 절차가 확보되지 않으면 전자투표는 무효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법원이 “전자문서법상 전자문서를 곧바로 집합건물법상 서면으로 볼 수 없다”고 명확히 판시한 것은 집합건물법상 서면합의와 전자적 합의가 엄격히 구별되며 별도의 규약 근거가 없는 한 단순한 전자문서로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판례는 향후 전국적으로 집합건물 관리단에서 전자투표 제도를 도입하거나 활용하려는 경우 반드시 법률이 정한 본인 확인 요건을 갖춰야 함을 보여주며, 나아가 관리규약을 개정해 완화된 전자적 방법을 허용하는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 한, 단순한 편의적 전자투표 방식은 무효로 판단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관리단 운영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려면, 기술적 편리함에 의존하기보다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 절차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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