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건물의 관리체계는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운영된다. 특히 관리단의 의사결정은 구분소유자의 공동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관리단집회는 그 자체로 공동체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관리인이 구분소유자들의 소집청구에 응하지 않거나 이를 지연함으로써 공동체의 의사결정이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2025비합119)의 결정은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관리인의 소극이 구분소유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 사례로 평가된다.
▲사건 개요
이 사건은 A오피스텔의 구분소유자 232명 중 70명이 즉 5분의 1을 초과하는 인원이 관리인에게 관리단집회 소집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인이 이를 일주일 내에 이행하지 않아 촉발됐다. 집합건물법 제33조 제2항과 제3항은 구분소유자의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명시해 소집을 청구한 경우 관리인이 반드시 소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의무를 일주일 내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구분소유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스스로 관리단집회를 소집할 수 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신청인들이 소집요건을 충족했음에도 관리인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구분소유자들에게 직접 집회소집을 허가했다.
관리인은 소집청구서에 첨부된 동의서 중 일부에 작성일자가 누락돼 있고 신분확인서류가 없다는 점을 들어 동의의 진정성을 문제 삼았다.
▲재판분의 판단
이에 대해 법원은 “집합건물법 어디에도 소집 청구 시 신분확인서류를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지적하며 관리인이 외관상 요건을 갖춘 청구에 대해 집회를 소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형식적 흠결을 이유로 구분소유자의 의사를 가로막는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결정이다. 법원은 특히 “의문이 있었다면 신청인 대표에게 소명 자료를 요청하면 됐음에도 장기간 아무런 조치 없이 청구 자체를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함으로써 관리인의 소극적 대응이 법이 보호하려는 공동체적 자치의 취지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법원은 관리인이 뒤늦게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집회를 소집한 행위 역시 실질적 회피행위로 평가했다. 관리인은 신청인들이 제기한 안건을 포함해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집회를 주도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고 법원은 “소집 청구 이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했다면 관리인은 동일한 안건에 관해 더 이상 소집 권한을 유지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는 단순한 절차적 판단을 넘어 집합건물법 제33조의 입법취지를 ‘구분소유자의 의사와 이익이 적시에 반영될 권리’로 해석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즉 관리인의 소집권은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구분소유자의 청구에 기속되는 신임적 권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결
이 결정이 주는 실질적 의미는 분명하다.
첫째 집합건물법 제33조의 ‘일주일 내 소집통지 의무’는 단순한 행정 기한이 아니라 구분소유자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강행규정이라는 점이다. 둘째 관리인이 소집 청구를 무시하거나 지연할 경우 법원은 ‘상당한 기간 경과’를 기준으로 그 권한 상실을 인정할 수 있으며 이후 관리인이 동일한 안건으로 소집을 하더라도 그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셋째 관리단의 운영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적 흠결’을 빌미로 한 방해행위는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집합건물의 관리단은 단순한 행정기구가 아니라 구분소유자의 의사결정 공동체다. 따라서 관리인의 직무는 권한이 아니라 신임에 기반한 ‘수탁자의 역할’에 가깝다. 이번 결정은 관리단의 자치를 회복하고 구분소유자의 실질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원의 적극적 태도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결국 집합건물법 제33조가 보장하려는 것은 ‘형식의 준수’가 아니라 ‘의사의 반영’이며 공동의 이익이 시간적 지연이나 절차적 형식에 묶여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법원은 이번 결정을 통해 “관리단의 민주적 운영은 절차적 투명성과 응답의 신속성에 달려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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