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의 입주자대표회의는 법령과 관리규약에 의해 구성되는 자치적 의결기구이지만 그 운영의 투명성과 절차의 정당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주민자치의 본질은 쉽게 훼손된다. 최근 광주지방법원 제13민사부(2024가합57731)는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제2선거구 동대표를 해임한 결의는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 판결에 대해 알아보자.

▲사건 개요
원고는 A아파트 제2선거구(B동·C동) 128세대의 동별 대표자이자 과거 회장으로 재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2024년 1월 새 임기를 시작했으나 불과 9개월 만인 같은 해 9월 입주민 해임투표 결과에 따라 해임됐다. 문제는 그 해임결의가 과연 관리규약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인가였다. 선거관리위원회는 2024년 8월 28일 긴급회의를 열어 원고 해임안을 상정하고 다음 날 이를 공고했으며 곧바로 소명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9월 23일부터 24일까지 투표를 실시했다. 겉보기에는 절차가 진행된 듯 보이지만 회의 소집 기간과 소명 기간을 단축한 점, 해임요청 서면동의서의 접수 시점과 진정성 여부 등에서 심각한 하자가 드러났다.

관리규약은 선거관리위원회 회의가 열리기 5일 전까지 소집통지를 해야 하며 해임투표 대상자에게 5일 이상의 소명 기회를 부여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장은 공고와 동시에 같은 날 회의를 개최했고 소명 기회는 사전에 보장되지 않았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이러한 절차적 위반을 ‘단순한 형식상의 하자’로 볼 수 없다고 봤다. 규약이 정한 기간은 단순한 형식요건이 아니라 해임대상자에게 방어의 기회를 부여하고 위원들에게 충분한 검토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 절차라는 것이다. 더구나 해임요청의 전제가 되는 ‘입주자 10분의 1 이상의 서면동의서’ 또한 회의 개최 이후에 접수되거나 사후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피고 측은 ‘원본 분실 후 재작성’이라 항변했으나 촬영 일시가 9월 2일로 나타나 있어 8월 27일 접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결국 법원은 해임결의가 관리규약 제20조, 제40조의 핵심적 절차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법원은 피고가 제시한 여러 해임사유의 실체적 근거 또한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첫째, 원고가 추천한 업체와의 수의계약 체결이 위법하다는 주장은 실제 계약은 입찰 2회 유찰 후 관리주체가 집행한 것이고 원고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배척됐다. 과태료 부과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입대의 차원의 행정상 위반일 뿐 개인 동대표의 해임사유로 귀속될 수 없다고 봤다. 둘째, 원고가 위탁업체 재계약 투표 중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주장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원고가 발송한 문자메시지 내용은 “공사 내용이 회장도 모른 채 진행됐다”는 취지의 의견 표명에 불과했고 허위임을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셋째, 피고가 제시한 윤리교육 미이수 사유 역시 원고의 전임기(2022년 회장 시절) 행위에 관한 것으로 현 임기(2024~2025년) 중 행위만을 해임사유로 삼을 수 있다는 규약 규정을 위반했다. 이같이 절차적 위법성과 실체적 부존재가 병존한 이상 법원은 “이 사건 해임결의는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판단했다. 특히 판결은 “위원 전원의 동의로 회의 소집 기간을 단축하거나 소명 기회를 생략할 수 있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해임대상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 절차이므로 임의로 배제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절차의 형식적 정당성이 공동주택 자치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소결
이 판결은 공동주택 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동대표 해임분쟁의 방향성을 분명히 제시한다. 입주민의 의사라 하더라도 관리규약에 따른 절차를 위반한 해임결의는 그 자체로 무효가 될 수 있으며 사후에 주민 다수가 찬성했다고 해서 정당화되지 않는다. 법원은 ‘민주적 자치’가 다수결의 숫자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해임결의는 한 개인의 명예와 지위를 박탈하는 조치이므로 그 절차는 형식이 아니라 권리보호의 본질적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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