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위치한 한 대규모 오피스텔 단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분쟁은 단순히 특정 건물의 내부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아파트 및 오피스텔과 같은 집합건물의 ‘관리’와 ‘자치’가 어디까지 법적으로 보장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결정(2025라20**)은 집합건물에서 구분소유자들이 관리인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도 정당한 절차를 통해 ‘집회’를 소집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아파트나 오피스텔 주민들에게 큰 의미를 던지는 판례다.

▲사건 개요
이 사건은 서울의 한 오피스텔 구분소유자 일부가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인으로 주장하던 인물이 이를 무시하자 법원에 ‘임시총회 소집 허가’를 요청하며 시작됐다. 전체 구분소유자가 312명에 이르는 이 대단위 건물에서 5분의 1 이상인 65명의 소유자들이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회의 소집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관리인행세를 하던 A씨는 자신이 분양계약서에 명시된 조건에 따라 정당하게 선임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A씨의 존재 자체를 ‘참칭 관리인’으로 판단했다.

핵심은 이른바 ‘관리인의 정통성’과 ‘관리규약의 유효성’에 있다. 분양 당시 사용된 표준분양계약서에는 “매수인은 분양자가 지정하는 관리인을 10년 동안 관리인으로 동의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A씨가 관리인으로 선임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
그러나 법원은 이 조항이 집합건물법의 강행규정 즉 구분소유자의 집합 결의로 관리인을 선임하고 관리규약을 제정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도 어긋나는 불공정한 조항이라고 봤다. 실제로 집합건물법은 분양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엄격한 조건을 부여하고 있다. 분양자는 입주 초기에 일정 기간 동안 임시적으로 건물을 관리할 수 있지만 일정 시점을 넘기면 구분소유자들이 주체적으로 관리단을 구성하고 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 법원은 이러한 점을 들어 해당 오피스텔의 분양계약서 제14조가 위법하며 이에 따라 선임됐다고 주장하는 A씨 역시 법적으로 유효한 관리인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이 판단은 분양자의 자의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실제 입주민들인 구분소유자가 중심이 돼 자치적으로 건물을 관리해야 한다는 ‘입주자 자치 원칙’을 재확인한 의미가 있다. 더욱이 A씨는 관리 규약이 이미 제정됐다고 주장했으나 그 근거로 제시된 동의서도 법률상 강행규정에 위배되며 적법한 집회를 통한 의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법원은 “A씨는 관리인을 자칭하고 있을 뿐 법적 효력을 지닌 적법한 선임 절차를 거친 관리인이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구분소유자들은 관리인의 방해나 부재 여부에 관계없이 법률에 따라 임시총회를 열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

▲소결
이번 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구분소유자 5분의 1 이상이 요청한 임시총회 소집이 법률적으로 어떤 요건을 갖췄는가에 대한 법원의 엄정한 기준이다. 신청인들은 정확히 65명으로 전체 소유자 312명 중 요구되는 정족수 요건을 충족했다. 관리인으로 행세하던 A씨는 일부 신청인이 동의를 철회하거나 애초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그러한 철회 사실이 ‘서면으로 수임인에게 통보됐는지 여부’와 ‘소송대리인에게 신분증을 제출하며 소송을 진행했는지 여부’ 등 실제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단순한 주장이나 문서상의 철회는 법적 효력을 갖기 어렵고 구체적이고 일관된 행동을 통해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또한 법원은 구분소유자들의 집회 소집 요청이 단순히 정족수를 맞추는 데 그치지 않고 회의 목적 사항인 안건이 적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A씨는 “이미 비슷한 안건으로 회의를 소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회의가 개최된 증거가 없었고 그에 따라 신청인들이 요청한 회의가 여전히 필요한 상태라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오피스텔 관리인을 둘러싼 소송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입주민과 분양자 또는 위탁관리인 사이의 구조적 갈등’의 축소판이다. 특히 분양자가 장기간 관리인으로 군림하며 입주민의 의사결정을 구조적으로 억제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돌아 보게 만들었다. 더욱이 ‘10년 동안 분양자가 지정한 관리인만 인정한다’는 조항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약관인지를 이번 판결을 통해 법원이 공식적으로 지적함으로써 향후 이와 유사한 조항이 법적으로 무효 처리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법리적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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