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에서 감사의 역할은 단순히 형식적으로 연 1~2회 보고서를 제출하는 절차에 그치지 않고 수십억원 규모의 공사·용역 계약과 수천명 입주민의 관리비 집행 전반을 감시·점검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정과 비리를 예방하는 중요한 장치다. 공동주택관리법과 관리규약에 따라 감사를 선임하는 취지 역시 그 권한과 책무를 실질적으로 행사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감사보고서에는 계약의 적법성, 절차 준수 여부, 비용 집행의 합리성 등에 관한 구체적인 지적과 권고 사항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특정인의 행위와 연결될 경우 특히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같은 관리단 의사결정의 핵심 인물의 실명을 언급하며 비판이 이뤄지면 그 내용과 표현에 따라 명예훼손 소송으로 번질 위험이 있으며 실제로 이번 판결은 감사의 보고 행위와 명예훼손 성립 여부의 경계선에 대해 다시 한번 법원의 시각을 제시했다.<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2024가합10422>
▲사건 개요
원고는 2023년 1월 1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 A아파트 입대의 회장으로 재직했고 피고 B와 C는 같은 기간(다만 B는 2024년 4월까지) 감사로서 활동했으며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 제4조에 근거해 감사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체 감사 결과보고서’를 작성·게시했다. 이 보고서는 아파트 내 모든 입주민이 열람 가능한 28개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부착했고 주요 내용은 ▲승강기 교체 공사 기술 감리 용역 계약에서 하자보증서 미징구 ▲D아파트 옥상 피뢰침 와이어 교체공사 수의계약 부적절 ▲외벽 균열 보수 및 재도장 공사에서 감리계약 체결 시기 문제 ▲헬스기기 물품 공급계약에서 계약보증서 미첨부와 납품 절차상 부적정성 지적 등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각 항목에는 계약서, 거래내역, 공사금액 등의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덧붙여졌다. 원고는 이러한 보고서가 마치 자신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거나 사익을 취해 아파트에 손해를 입힌 것처럼 비춰져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고 주장하며 피고들에게 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간 정정보고서를 게시할 것과 피고 B, C에 대해 공동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1000만 원 및 이자를 지급할 것을 청구했다.
▲법원의 판단
그러나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법원은 먼저 피고 B와 C가 입주자대표회의 감사로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법령상 권한 범위 내 행위고 각 지적은 승강기 교체 공사 용역계약서, 공사 도급계약서, 거래 내역 확인증, 회의록 등 실존하는 문서에 기초한 것임을 인정했다. 또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평가를 실질적으로 저하시키는 결과가 발생해야 하는데, 이번 보고서의 표현은 절차상 부적절성에 대한 비판에 머물고 있으며 원고가 사익을 취했다거나 불법행위를 했다는 단정적·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특히 대법원(2005다65494)판결에서 제시한 “순수한 의견 표명은 명예훼손이 될 수 없으며 의견의 전제가 되는 기초 사실이 허위이거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에만 문제된다”는 법리를 인용하며, 이 사건 보고서가 허위사실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보고서의 각 항목은 모두 계약 시기, 금액, 방식 등 문서상 기재를 근거로 작성됐고 일부 평가적·권고적 표현이 있더라도 이는 공익 목적의 의견 표명 범주에 속한다고 봤다.
또한 공동 관리규약 제82조가 정한 감사보고서 작성 기준(적시성·완전성·간결성·논리성·정확성·공정성) 위반 여부와 관련해서도 보고서가 현저히 이를 위배했다고 인정할 수 없으며, 설령 일부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소결
이 판결의 의의는 공동주택 관리라는 특수한 공익 영역에서 감사가 직무상 행한 보고서 작성·게시 행위에 대해 그 표현이 다소 비판적이더라도 공익 목적에 기초하고 객관적 자료에 기반하면 명예훼손 성립이 쉽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 데 있다. 즉 법원은 직무 범위 내의 사실 기반 비판에 대해서는 폭넓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허위 사실 적시나 인신공격적 표현, 사실 왜곡에는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경계선을 유지했다.
실무적으로 공동주택 감사나 입대의가 유념해야 할 점은 첫째, 보고서 작성 전 모든 지적 사항에 대해 계약서, 회계자료, 공문서 등 객관적 근거를 확보하고 둘째, 표현에 있어 ‘부적절해 보인다’,‘대책이 필요하다’처럼 평가적·제안적 어휘를 사용해 단정적 비난을 피해야 하며 셋째, 관리규약이 정한 작성 기준을 충실히 준수해 추후 분쟁에서 방어 논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넷째, 보고서의 공개 범위와 기간을 합리적으로 설정해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이번 판결은 감사가 ‘공공의 감시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일정 범위의 비판과 의견 표명은 법적으로 보호되지만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이 허위이거나 표현이 인신공격적일 경우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는 감사뿐 아니라 회계감사, 내부감사, 각종 위원회의 점검 보고 등 공익적 조사·보고 활동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므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실무자는 이번 판례의 취지를 숙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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