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생활연구소 인사이트
주거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안전하게 머물 공간이 보장돼야 일상이 유지되고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거 현실은 많은 질문을 던진다. 부동산 가격의 불안, 임대차 시장의 불균형, 반복되는 전세 사기 문제, 노후 공동주택의 안전, 그리고 커뮤니티의 소외와 분쟁까지. 이 모든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이 안고 있는 복지의 과제를 드러낸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이러한 주거 문제를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닌 사회 정책, 복지 정책의 일부로 보고 대처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주택 공급 확대뿐만 아니라 생애주기별 맞춤형 주거 지원, 서민과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 완화, 고령자·신혼부부를 위한 맞춤형 주거대책, 지역사회통합돌봄체계 구축 등 종합적인 주거복지 접근을 예고했다.
주요 방향 중 하나는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이다. 공급은 여전히 주거 안정의 핵심이다. 하지만 단순히 양적 확대에 그치지 않고 고품질 공공임대주택 비율 단계적 확대, 공공분양 방식 다변화, 분양주택 공공주택리츠 설립 등 공급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담겨 있다. 특히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등 다양한 수요자 계층을 위한 맞춤형 공급 방식이 병행될 예정이라는 점은 긍정적 변화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 민영주택 특별공급 확대 등 실거주 중심의 지원이 예고됐으며 고령자를 위해서는 고령자복지주택 확대, 고령자 친화형 건축 활성화, 은퇴자 도시 조성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주거정책도 포함됐다. 이는 단순한 공급을 넘어, 삶의 단계와 생활 양식을 반영한 주거복지 실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천명했다. 피해자 지원 확대, 전세사기 예방 관련법 재정비, 가해자 처벌 강화 등 예방과 회복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전세사기에 가장 크게 노출됐던 청년층을 위한 주거복지 강화는 공약의 중요한 축이다. 지자체별 1인가구 주거지원센터 운영 등 정보제공을 강화하고 청년 맞춤형 공공분양과 월세 지원 확대가 함께 제시됐다. 특히 직장과 주거가 가까운 주거복합플랫폼주택 조성 계획은 청년층의 생활 양식과 이동 패턴을 반영한 새로운 유형의 주택 모델로 주목된다.
또한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나 장애인 등을 위한 ‘지원주택’을 도심 내에 확충하겠다는 계획도 공약에 포함됐다. 이는 주거와 복지, 건강관리 서비스를 연계한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다. 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주택의 기능은 점점 ‘삶의 통합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주거복지의 확장은 주택 ‘관리’라는 또 다른 차원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지만 주거 관리에 대한 정책까지는 아직 구체화가 부족하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공동주택 관리의 질은 곧 주거복지의 질이다. 공공임대주택의 품질 향상뿐 아니라 노후 공동주택 관리 체계 개선과 주택관리산업의 전문성 제고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관리주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또한 깊어져야 한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공동주택 내 돌봄·안전·커뮤니티 기능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건축물 유지관리의 수준을 넘어, 주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으며, 주거정책과 관리정책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아파트 관리 현장은 주거정책 협력의 중심이자, 주거복지의 ‘현장’이다. 단지 내 갈등 조정, 주민과의 소통 강화 등은 단지 관리 수준을 넘어서 주거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주택관리 전문가의 전문성과 안정적 근무환경 보장, 입주민의 참여 활성화, 공공의 제도적 지원이 함께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주거복지는 새로운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시대마다 다른 해석과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복지로서의 주거’라는 오래된 명제를 실질적인 제도로 구체화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정치적 수사나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 꾸준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쌓여야만 주거는 권리가 될 수 있다.
새 정부가 그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고, 국민의 삶에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정책들을 실현해 가길 기대해 본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집, 그 집을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삶의 공간을 지켜낼 제도 모두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주거복지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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