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구의 소방클리닉

이택구 소방기술사
이택구 소방기술사

아파트 화재는 단순히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 세대와 건물 전체로 급격히 확산될 수 있는 중대한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발코니에서 발생한 불길은 거실을 거쳐 위층으로 곧장 번지는 경우가 많다. 발코니는 본래 화재를 늦추는 완충 공간으로 설계됐지만 거실 확장이 보편화되면서 그 역할이 사라졌다. 사실상 발코니가 거실과 하나로 이어지면서 불길은 자유롭게 상하좌우로 확산되게 됐기 때문에 오히려 화재 확산의 통로로 전락했다. 내화유리나 방화벽 설치 규정이 존재하더라도 현실에서는 경제성을 이유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결국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국토교통부와 소방청이 실효성이 전무한 일반 스프링클러로 발코니 확장을 대체했다. 정부 스스로가 입주민의 안전을 결국 뒷전으로 밀려나가게 한 셈이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윈도 스프링클러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화재 시 창문 전면에 수막을 형성해 유리를 보호하고 불길의 확산을 억제하는 장치로 단순히 물을 뿌리는 설비가 아니라 실질적인 화재 환경에서도 창을 보호하고 화염 확산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장치다. UL 199와 FM 인증을 받은 제품들은 화재실험, 열차단 성능, 내압·내구성, 열충격·부식 저항 등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 성능을 검증받는다.

문제는 국내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윈도 스프링클러 형식승인기준이 지난해 마련되기는 했지만 설치기준은 미제정 상태이다. 아직 인증 제품도 존재하지 않는다. 위 형식승인기준에는 ‘열차단시험’ 하나만 존재할 뿐 해외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살수 패턴 시험, 내압·내구성 검증, 열충격 시험 등은 빠져있다.

실제 설치 환경과 차이가 큰 시험 조건 역시 문제다. 시험 장치 규모나 유리 설치 방식, 수압 범위 등이 현실과 맞지 않아 설사 제품이 인증을 받더라도 실제 화재 상황에서 기대한 성능을 발휘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형식승인’만 받으면 안전이 확보된 것처럼 홍보되거나 발코니 확장 대책의 만능 열쇠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발코니는 단순한 건축 공간이 아니라 내 집과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발코니 확장해야 한다면 그에 맞는 안전 장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불완전한 시험 기준과 국제 인증품의 부재 속에서 윈도 스프링클러를 발코니 화재 안전의 해법처럼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설치 의무화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으며 UL·FM 수준의 인증 제품 확보와 현재 시험 기준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또한 기존 발코니 확장에 따른 위험성과 심각성을 입주민 스스로 인식하고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 차원에서 입주민안전을 위해 실효성이 있는 국제인증 윈도 스프링클러가 추가로 설치되거나 방화유리로 교체가 가능하도록 제도개선 요구하는 강력한 목소리도 필요하다.

아파트 관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안전 확보다. 윈도 스프링클러는 발코니의 중요한 보완책이 될 수 있으나 단순 설치가 아니라 실질적 성능 검증과 국제적 인증 체계를 갖출 때 비로소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제도 개선과 기술 검증을 동시에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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