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라는 공간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생활 공동체다. 관리비, 하자보수, 입찰, 소송대리인 선정 등 어느 하나를 두고도 주민들 사이의 의견은 쉽게 엇갈린다. 그러나 그 갈등이 인터넷 게시글로 비화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공익의 이름’으로 포장될 때 사적인 분쟁은 형사법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대구지방법원(2025고정169)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허위 사실을 게시한 아파트 동대표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하며 온라인상의 공론이 비방으로 변질되는 순간 법의 단죄를 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사건 개용
이 사건 피고인은 한 아파트의 동대표이자 감사로 하자보수 소송 대리인 선정을 둘러싸고 입주자대표회의 대표와 갈등을 빚던 인물이었다. 대표는 법무법인 A를, 일부 동대표들은 다른 법무법인 B를 선호했다. 갈등이 깊어지자 피고인은 2024년 7월 입주민 전용 인터넷 사이트에 “6월 대표회의 때 입주자 투표를 하자는 의견에 모든 대표가 찬성했지만 C대표만 반대했다”는 글을 게시했다. 그러나 실제 회의록에는 입주자 투표 관련 안건이 존재하지 않았고 대표가 반대한 사실도 없었다. 법원은 이런 허위 게시글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의 판단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본질을 단순한 ‘갈등의 언어’가 아니라 ‘거짓을 통한 비방’으로 규정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투표 부의를 안건으로 삼지 않은 것이 곧 반대의 표현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안건을 상정하지 않은 것과 반대한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며 이를 단호히 일축했다. 나아가 법원은 피고인이 이미 피해자를 고소인으로 하는 형사사건의 피의자 신분이었음을 지적하면서 그가 작성한 글이 ‘고소에 대응하기 위한 공격적 게시물’이었다고 판단했다.
즉 게시글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피고인의 공익 목적 주장이 법원에 의해 철저히 배척됐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이 “입주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대법원(2003도601) 판결을 인용하며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는 정보통신망 명예훼손에는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 사유가 적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설령 일부 공익적 의도가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비방이 본질인 글은 결코 ‘공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법원은 또 피고인이 허위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글을 게시한 점, 그리고 피해자에게 정식으로 안건 부의를 요청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당행위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법원은 피고인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양형 이유에서 “피고인이 순전히 사익을 위해 글을 게시한 것은 아니며 전과가 없고 일정한 공익적 동기도 일부 인정된다”면서도 비방 목적이 본질적 동기였다는 점을 들어 약식명령의 벌금형을 유지했다. 즉 사적 분쟁이 공적 담론의 탈을 쓴다 해도 그것이 허위사실을 포함하고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실질적으로 훼손한다면 형법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결
이 사건은 오늘날 공동주택 사회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온라인 분쟁의 형사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입주민 커뮤니티, 단체 채팅방, SNS 등은 소통의 장이면서 동시에 분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특히 입대의 구성원 간의 의견 충돌이 공적인 문제로 확대되면서 허위 정보나 왜곡된 사실이 ‘입주민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유포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행태를 공익적 표현으로 보지 않는다. 사실의 진실성, 목적의 공공성, 표현의 절제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인터넷상의 비판은 곧 명예훼손으로 귀결될 수 있다.
명예훼손죄의 본질은 ‘허위 사실의 사회적 파급력’에 있다. 인터넷은 그 파급을 몇 초 만에 전국적으로 확산시킨다. 피고인의 게시글은 한순간의 분노로 작성된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것이 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아파트 내 여론을 왜곡시킨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법원은 이 점을 강조하며 “공익을 명분으로 한 비방은 결국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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