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화의 나무가 있는 풍경〈28〉

겨울폭설에도 꿋꿋히 서 있는 스트로브잣나무
겨울폭설에도 꿋꿋히 서 있는 스트로브잣나무

한겨울 허허벌판에 벌거숭이로 서 있는 나무들을 보라. 인간은 추위를 견디고자 옷을 입고 열에너지를 이용해 체온을 유지하지만 나무는 집도 없고 옷도 입을 수 없고 한번 정착한 곳이 생의 시작과 마지막이 된다. 이번 겨울 소나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눈이 많이 와 눈 덮인 나무를 보면 차가운 바람과 얼어붙은 나무들이 괜찮을까 궁금해진다.

나무들의 겨울나기는 가을부터 시작된다. 옷깃을 여밀 정도로 날씨가 쌀쌀해지면 산과 들, 가로수는 화려한 빛깔로 물든다. 단풍이 드는 것이다. 화려한 축제의 시간이 지나면 마른 나뭇잎은 하나둘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데 이는 추운 겨울이 오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뜨려 월동 준비를 하는 것이다.

폭설에 부러진 소나무
폭설에 부러진 소나무

일조 시간이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이를 감지한 나무는 잎과 가지가 연결되는 ‘떨켜’라는 층을 만들어 가지에서 잎으로 수분이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잎이 서서히 마르면 땅으로 떨어지고 이렇게 낙엽이 지는 나무를 낙엽수라고 부르며 아파트 정원의 60~70%가 식재돼 있다.

하지만 소나무, 잣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전나무, 구상나무, 동백나무 등을 보면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다. 낙엽수는 잎을 떨어뜨리고 추위를 이겨내는데 어떻게 이 나무들은 잎을 달고도 겨울을 날 수 있을까. 이 나무들은 스스로 세포에 아미노산이나 수크로오스와 같은 당분을 비축하면서 겨울을 대비한다. 당분이 높아지면 세포액의 농도가 증가해 기온이 낮아져도 나무가 얼지 않는다. 마치 추운 겨울 강물은 얼더라도 염분이 있는 바닷물은 잘 얼지 않는 것처럼 농도가 증가한 세포액은 자동차의 부동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너무 추우면 세포 속의 물이 얼어 부피가 늘어나는 일도 있는데 침엽수의 세포벽은 활엽수에 비해 두꺼워 쉽게 터지지 않는다.

폭설에 부러진 소나무
폭설에 부러진 소나무

또한 활엽수에 비해 침엽수의 바늘잎은 표면적이 작고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단단한 밀랍질(왁스층)로 돼 있어 겨울나기가 쉽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활엽수로 겨울을 나는 나무로는 사철나무, 동백나무, 호랑가시나무, 치자나무, 유자나무가 있다. 그중에 사철나무는 추위에 강해 중부지방을 비롯해 전국 어디서나 조경수로 이용되고 있다. 나무가 나무로서 살아남는 방법은 인간보다 훨씬 진화했다.

나무의 겨울나기를 통해 위대함을 배운다. 그런데 최근에는 급격한 기온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는 나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겨울옷이 필요한 나무들이 있는지 관심과 사랑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