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화의 나무가 있는 풍경〈32〉

‘봄’이 오면 생각나는 꽃은 단연 벚꽃이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노오란 수선화가 지상의 별로 내려와 나지막이 노래하고 아파트에도 산수유가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에 고요히 피어나도 꽃샘바람을 핑계로 봄나들이를 주저하다 벚꽃이 피면 그냥 있기에는 왠지 미안할 것 같아 문을 열고 나선다. 연분홍빛이 주는 달큰한 설렘은 연지곤지 찍고 고왔던 시절로 데려가고 벚꽃 바라보며 걷는 길은 웃음꽃으로 가득해진다. 한 소쿠리 팝콘이 터지듯 나무 전체를 가득 뒤덮은 벚꽃은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조경수이자 가로수로도 전국에 제일 많이 식재돼 있다.

벚나무는 원산지를 놓고 논쟁이 많았던 나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곳곳에 심어진 일본 왕벚나무 소메이요시노는 일본의 국화로 일본 사람들이 신성시하며 가장 좋아하는 나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픈 역사의 잔재물로 여겨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1908년 프랑스인 신부 타케가 처음 제주도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하고 반세기가 지나 1962년 식물학자인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은 우리나라 연구자로서는 처음으로 왕벚나무 자생지를 확인하고 벚꽃은 우리 꽃이며 한라산이 원산지임을 주장해 벚나무의 기원은 우리나라 제주도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한국 원조론에 맞서 일본에서는 벚나무의 야생 원종을 찾으려 전국을 뒤졌지만 실패했고 일본 왕벚나무는 1700년대 도쿄 근처에서 자생종인 올벚나무와 오오시마벚나무를 인위적으로 교배해 만든 품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왕벚나무는 형태상으로 매우 비슷해 일본에서 못 찾은 자생지가 제주도 한라산에 있다면 일본 왕벚나무의 원조는 분명 제주도일 것 같은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 부족한 면이 있었다.

한라산 왕벚나무가 어디서 기원했는지, 한국과 일본에 살고 있는 두 왕벚나무가 같은 나무인지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았었는데 2018년 국립수목원 지원으로 시작된 왕벚나무의 유전체(게놈)를 해독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완전한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고 밝혔다.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유전적 뒤섞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그동안 제주의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왕벚나무가 되었다거나 일반 왕벚나무가 제주 왕벚나무가 되었다는 주장은 유전적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 셈이다.

그렇게 왕벚나무는 100년의 세월을 훨씬 지나 제주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제주 토종 벚나무나 산벚나무를 부계로 태어난 1세대 자연 잡종이고 일본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는 모계가 올벚나무, 부계가 일본 토종 오오시마 벚나무로 밝혀져 서로 다른 종(種)임을 결론 내렸다.

그러나 한·일 벚꽃 원조 논란은 같은 듯하지만 다른 나무로 제주의 왕벚나무는 제주 것이고 일본의 왕벚나무는 일본 것으로 논쟁은 종식되는 듯했으나 제주 자생 왕벚나무의 대표격인 관음사 왕벚나무가 일본 왕벚나무와 유전체가 같다는 특이한 결과로 국립수목원은 왕벚나무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추가로 시행해 제주뿐 아니라 전남의 왕벚나무 자생지도 조사하기로 했다.

신문 기사에서 벚꽃 명소로 유명한 진해군항제 벚나무 96%가 일본 왕벚나무 소메이요시노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왕벚나무는 대부분 일본 왕벚나무라고 한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으랴. 나무에 국적을 따져 우리 것이 아니라고 배척하거나 적대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벚나무 종류에는 왕벚나무, 산벚나무, 잔털벚나무, 올벚나무, 분홍벚나무, 처진벚나무 등이 있으며 왕벚나무가 가장 인기 있는 이유는 꽃이 가장 예쁘고 화려하기 때문이다. 왕벚나무 수명이 60~80년으로 이제 자연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만큼 교체 시에는 자생 제주도 왕벚나무로 심어 당당히 우리 꽃으로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지키며 사랑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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