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신내동 새한아파트 김재원

우수·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오기도 전에 기온이 20도까지 올랐다. 갑자기 여름이 와서 내 몸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아직도 한 두 번의 꽃샘추위가 남아 있을 듯한데 꽃나무들이 이를 알리 없다. 아파트 정원을 한 바퀴 돌며 봄기운을 찾아 나섰다. 봄의 전령인양 산수유가 작은 꽃망울을 앙증스럽게 내밀었다. 이 땅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어느 시인은 산수유를 이렇게 노래했다. ‘모든 꽃망울이 웅크릴 때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산수유, 모든 열매들이 떨어질 때 맨 나중까지 붉게 달린 산수유···’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품고 있던 연정을 노란 꽃으로 피워내니 꽃말을 ‘지속’, ‘불변한 사랑’이라 이름 지었나 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산수유의 꽃잎 숫자가 늘어날 때면 남쪽으로부터 매화가 피어온다.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 간간이 서 있는 매화나무는 예로부터 사군자 중 으뜸으로 쳤고 송죽(松竹)과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변치 않는 절의의 상징이다. 매화는 오랜 세월 선비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아왔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마당에 핀 매화를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늙어도 꾸정꾸정 서리 눈 견디고서 맑고도 깨끗한 모습 세상 먼지 벗어낫네, 보이지 않는 향기 진실로 그윽하니 매화 붉은 꽃잎만 사랑스런 것이 아닐세’ 매화꽃이 제 흥에 겨워 한창 요염을 떨고 있을 무렵 아파트 정원의 왕비격인 목련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목련은 꽃이 피려고 할 때 끝이 북쪽을 향한다 해 ‘북향화’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햇빛을 많이 받는 꽃 덮개가 빨리 성장해 북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목련은 꽃말이 ‘고귀함’, ‘숭고한 사랑’이라 해 많은 시인 묵객들이 목련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박목월 시인은 사월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이런 고귀한 사랑의 목련꽃이 떨어질 때면 경비원 아저씨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목련꽃은 처참하다. 빨리 치워야 한다. 목련이 지나가면 하늘 높이 치솟은 벚나무에서 눈송이 같은 벚꽃이 만개한다. 시내 곳곳이 벚꽃 천지가 되면 아파트 입주민들도 윤중로나 잠실로 몰려간다. 그 사이 아파트에는 몇 그루의 진달래가 피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중국 촉나라 망제(望帝)의 무덤에서 피어났다는 전설의 꽃. 두견새가 토해낸 붉은 피로 물들어 꽃잎이 붉다는 진달래. 어린 시절 뒷동산을 누비며 시름없이 따 먹던 꽃. 그래서 참꽃이라 부르기도 하는 진달래가 지면 이제는 홍색, 자색, 백색의 철쭉이 옹벽 위를 뒤덮는다. 이때쯤 되면 먼저 옹벽을 차지한 개나리는 뒷전으로 물러난다.

‘사랑과 정열’이란 꽃말을 가진 철쭉은 불행하게도 흉년에 배고픈 두 형제가 산고개를 넘어가다 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전설의 꽃이다. 형은 철쭉으로 피어나고 동생은 진달래로 피어났다. 철쭉과 진달래는 똑같이 진달래 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울긋불긋 화려한 철쭉이 그 빛을 잃고 한잎 두잎 떨어져 가면 영원할 것 같던 봄날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계절은 여름으로 치달려 간다. 허리를 낮추고 아파트 벽 모서리에 몰래 핀 제비꽃은 찾아볼 겨를도 없다. 봄날은 이렇게 빨리 간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