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신내동 새한아파트 김재원

우리의 고유명절인 추석은 중추절·가배·가위·한가위 등으로 불린다. 추석은 한해 농사를 거의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가장 풍성한 명절이다. 그래서 옛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추석은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유래했으며 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쇠었고 조선시대에는 선대왕에게 추석제를 지낸 기록이 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여름철에 무너진 무덤 보수와 벌초를 한다. 차례상에 올리는 제물은 햇곡으로 준비해 먼저 조상에게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유리왕 때 6부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눠 두 왕녀가 여자를 거느리고 7월 기망(旣望)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 동안 성적을 가려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해 이긴 편을 대접했다. 이때 ‘회소곡 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배’라고 불렀다.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쇠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국가적 행사로 선대왕에게 추석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다. 그리고 1518년(중종13)에는 설, 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추석명절은 예부터 풍성한 수확을 주신 조상께 감사차례를 지내고 이웃과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며 노래와 춤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명절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추석은 기쁘고 즐거운 명절만은 아니다. 1959년 추석은 마음이 시리고 아픈 명절이었다. 추석날 새벽부터 동해안 일대를 덮친 사라호 태풍에 조상께 차례를 지낼 여유도 없었다. 폭우를 동반한 태풍은 순식간에 초가지붕을 홀딱 날려버렸다. 차례를 준비하던 아버지는 폭우가 쏟아지는 지붕으로 올라가 새끼줄로 지붕을 붙들어 매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집 앞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터져 마당에 황톳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세간을 옮길 여유가 없었다. 어린 동생들부터 마을뒷산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니 태풍은 간곳없고 햇볕이 내려쬐기 시작했지만 안방까지 물이 찬 집안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우리 식구들은 집안에 들어찬 물이 빠질 때까지 몇 날 며칠을 이웃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세월이 흘러 명절을 보내는 풍속도 많이 달라졌다. 추석이 3일 연휴가 되다 보니 이때를 이용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올해 추석은 그동안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풀려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날 것이다. 요즘은 호텔이나 콘도에도 제사음식을 배달한다고 하니 차례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었다. 연휴를 맞아 고향을 찾아가든 아니면 휴가를 떠나든 각자의 형편대로 할 일이다. 그렇다고 대대로 내려온 명절 풍속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추석은 조상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이웃에게 나눔을 베푸는 명절이다. 그러나 명절에도 아파트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있다. 관리실 안전요원들, 경비원 아저씨들, 미화원 아주머니들. 이들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해 줄 사람은 우리 입주민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메난드로스(Menander)는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다”라고 말한다.

작은 나눔이 이들의 마음을 채워줄 것이고 공동체를 훈훈하게 할 것이다. 감사는 기쁜 마음에서 나오고 나눔은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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