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 차상곤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민이 층간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최근에는 “옆집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 “나를 믿지 않고 정신병자 취급하는 행복지원센터 직원들을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자주한다는 것이다. 이에 심각성을 느낀 관리소장과 동대표, 행복지원센터와 지구대 직원인 한데 모여 회의를 했다. 필자의 자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서 갔는데 현장의 사태는 심각했다.

관리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입주민은 6년째 층간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즘 들어 이상 행동을 보이는데 옆집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놓기도 하고 세밀하게 기록도 합니다. 옆집은 아들 중 한 명이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그 아이가 가족들과 대화할 때 고함을 지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동대표가 이 사태에 대한 보충 설명을 시작했다. “이 입주민이 너무 예민한 사람 같아요. 옆집 사정을 이야기해도 누구 편을 드느냐고 되레 고함만 칩니다. 최근에는 일부러 TV 볼륨을 크게 하거나 자기 현관문에 깡통을 걸어두고 계속 두드려 입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주의를 줘도 소용없고 도리어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행복지원센터 직원이 말했다. “정신적 문제로 마음이 불안한 상태입니다. 살인 위협을 하는 통에 옆집과 이웃들이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다. 얼른 병원에 입원시키는 게 어떨까요?”

이번에는 지구대 직원이 말했다. “그게 좋을듯 합니다. 행정 입원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병원에 입원시켜 진정하게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관리소장, 동대표, 행복지원센터 직원, 지구대 직원은 제각기 자신이 알고 겪은 사실을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행복지원센터 직원은 1년 동안 민원인을 꾸준히 만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토로했고, 동대표도 이사할 것을 권해봤지만 대화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민원인은 경찰에 신고도 하고 법원에 소송도 했지만 이마저 기각되자 “경찰과 법원, 정부도 도와주지 않는다. 결국 내 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살해 협박을 하는 중이었다.

동대표가 필자에게 물었다. “소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필자는 “모두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민원인은 이미 정신병자라는 거네요. 그렇다면 굳이 제가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정신병원 담당자를 불러 입원 절차를 알아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여러분이 꼭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상담과 중재를 하고 있지만 층간소음 피해로 인해 정신병자가 된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모두가 정신병자로 결론을 내렸다면 입원 외에는 방법이 없지만 말입니다.”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졌고 필자는 그들의 침묵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럼 소장님이라면 어떻게 접근하실 건가요?”라고 물었다. 필자가 제시한 해결방법은 추후 자세히 언급하겠다.

층간소음 피해를 1년 이상 겪게 되면 피해자들은 옆집 또는 윗집의 사람이 언제 일어나고 몇 시에 화장실에 가고 아침을 먹는지, 아이들이 언제 학교에서 돌아오고 잠을 자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핸드폰 진동 소리와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제가 미친 것 같아요.”, “제가 환청을 듣는 건 아닐까요?” 민원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마치 윗집이나 옆집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특히 아파트는 똑같은 구조라 윗집의 소음만으로도 그 사람의 동선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심한 공포는 이런 어려움을 윗집, 옆집, 관리소장, 경비원, 평시 친하게 지내던 이웃에 털어놓으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층간소음 피해자는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다. 단지 그들은 층간소음 피해를 아주 심하게 겪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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