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 차상곤

“사람을 기만하고 자격이 없는 관리사무소장은 물러가라!”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베란다에 걸린 현수막이다. 관리소장이 자신의 층간소음 민원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다고 모든 입주민이 볼 수 있게 걸어둔 것이다. 결국 관리소장은 그만뒀고 현수막은 철거됐다. 그야말로 층간소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관리소장은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아파트 관리소장의 수난 시대다. 2020년 4월 경기 부천시에서 60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 여성은 한 아파트의 관리소장이었는데 입주민의 갑질로 소중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유족들은 관리소장이 입주민으로부터 약 1년 8개월에 거쳐 층간소음 문제로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가장의 사망이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 민원 제기로 인한 스트레스가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의 요인에 겹쳐 우울 증세가 유발되고 악화했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필자는 몇 년째 아파트 관리소장을 대상으로 층간소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 만나는 관리소장들의 목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고 최대한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현장이야기는 다양하다.

“월요일 아침 9시가 되면 정확하게 전화가 와요. 민원인이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겪은 층간소음을 이야기합니다. 듣고 있으면 딱하기도 하지만 2시간 정도 듣다 보면 저도 정신이 몽롱해져요. 그날 하루 일이 안 됩니다. 너무 힘들어요.”, “층간소음을 해결할 방법이 없나요? 민원을 듣다 보면 제가 다 답답해요. 그렇다고 마땅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밤마다 층간소음 민원인 집에서 같이 보초를 섭니다. 소음이 들리면 현장을 잡아 중재하려고요. 저도 힘들지만 민원인들이 오죽하면 그러겠습니까? 그 심정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2017년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관리법 제20조에 관리소장을 층간소음 해결의 중심축으로 공표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20조는 총 7개 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5개 항에서 관리소장의 역할을 언급할 만큼 책임성이 커진 것이다. 그 내용 중 ‘관리주체’로 표기한 부분에 바로 관리소장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 법을 만들기 전에는 층간소음 문제를 입주민끼리 해결해야 했는데 관리주체의 역할이라고 명시한 까닭에 그 책임이 고스란히 관리소장에게 넘어간 것이다. 아파트 층간소음 분쟁이 발생 시 관리소장이 개입해 소음 발생 중단을 권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관리소장으로선 전문지식도 부족하고 층간소음뿐 아니라 아파트 내에 산적해 있는 일이 너무 많아 집중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정부도 현장의 심각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 단지에는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 법은 국회에 논의 중이지만 이와 상관없이 관리사무소와 관리소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층간소음관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층간소음 민원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도 있다. 층간소음 피해자 입장에서는 관리소장이나 관리사무소의 업무 처리가 답답하고 느리고 제 역할을 못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원인의 심각하고 어려운 민원을 받고 하소연을 들어줄 곳은 관리사무소 밖에 없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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