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 차상곤

“왜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는지 알 것 같아요” 오랫동안 층간소음에 시달린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실제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은 해마다 1건 이상(폭행과 살인미수는 제외) 발생하고 있다. 층간소음으로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했던 사건 하나는 2013년의 서울 면목동 아파트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층간소음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인식을 달리하게 만들었고, 층간소음 기준 제정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필자의 뇌리에 지금도 깊이 자리하고 있다. 면목동의 아파트에 사는 박규만(가명) 씨 부부 집에 결혼한 두 아들이 명절을 지내러 왔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자 집 안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바로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실입니다.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해서요. 조금만 주의해 주세요”. 두 집은 이미 오래전부터 층간소음 문제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아랫집에는 김명희(가명) 씨와 여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층간소음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초인종을 누르고 항의하기 일쑤였다. 김명희 씨로 인해 동거남 유한진(가명)도, 박규만 씨로 인해 아들들도 각자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유한진 씨가 윗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현관문을 발로 찼다. 무슨 일인가 싶어 둘째 아들이 황급히 문을 열자, 유한진 씨가 “조용히 좀 삽시다! 예?”라고 소리를 질렀고, 둘째 아들은 “그렇게 시끄러우면 이사 가면 될 거 아냐?”로 고성을 질렀다.

감정이 폭발할 대로 폭발한 형제와 유한진 씨를 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유한진 씨가 갑자기 화단쪽으로 내려가 형제들을 불렀고,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회칼을 꺼내 휘둘렀다. 형제는 결국 과다 출혈로 숨졌다. 아버지 박규만씨는 “내가 두 아들을 죽였다”며 비통해하다 형제가 사망한 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한 가족이 몰살한 큰 사건이다 보니 수많은 언론에서 크게 다뤘고, 그 당시의 울부짖음과 피비린내가 풍기는 듯한 현장을 보니 필자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살인을 저지른 유한진 씨와 피해자 형제가 해당 아파트의 거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가족에게 층간소음 인한 어려움을 전해 들었고,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감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대면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만나 이렇게 심각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존 그레이 박사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다. 이 책은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은 남자와 여자가 본질적 차이점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 출신이고, 따라서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서로의 차이점들이 기억에서 모두 지워지며 그들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지난 22년간 2000건 이상의 층간소음 중재를 해오며 필자가 느낀 점이 이와 비슷하다. 층간소음 겪고 있는 아랫집과 윗집은 마치 각기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다. 그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지만 어떤 점은 비슷하기도 하고 어떤 점은 위치만 다를 뿐 똑같기도 하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해결방법은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단, 필자는 이들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현재 겪고 있는 층간소음에 대한 명확한 해결방법은 없지만 폭행이나 살인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더불어 생활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윗집에 거주하는 사람은 아랫집의 층간소음 피해가 1년이 넘었다면 폭행과 살인 충동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기간에 아랫집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피해야 하고 엘리베이터나 밖에서 직접 접촉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층간소음 문제를 전문가와 꾸준하게 상의하면서 그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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