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타관              주택관리사·경제학 박사      미래주거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
최타관              주택관리사·경제학 박사      미래주거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

2023년 현재 우리 사회는 묻지마 범죄에 노출돼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대한민국=안전한 국가’라는 인식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 온라인을 통한 모방범죄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모 방송사에서 집중 조명한 ‘묻지마 범죄는 없다’에서는 길 위의 살인자들에 관해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이 내용에서 최근 발생하는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로 설명한다.

이상동기 범죄에 대해 위키백과에서는 ‘뚜렷하지 않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동기를 가지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벌이는 폭력적 범죄’라고 정의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그랬고 2014년 울산 남구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 2012년 칠곡군 왜관읍에서 발생한 여대생 살인사건이 그렇다. 그렇다면 굳이 살인사건이 벌어져야만 환경과 여건이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나?

이쯤에서 우리의 관심사인 대한민국 주거형태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공동주택에서의 범죄문제를 되짚어보자. 공동주택 점유율이 미미했던 1992년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공동주택의 범죄 방어 공간도입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아파트의 범죄 유형으로 자동차의 긁힘, 훼손이 전체 범죄의 3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고, 배달물 도난범죄 24%, 자전거·오토바이 도난범죄 21% 순이었다. 그러나 이 연구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작금의 현실은 다르다. 크고 작은 공동주택 내에서의 범죄율은 다양하게 변형돼 가고 있다.

필자는 연구의 결과와는 약간 다르게 공동주택의 범죄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공동주택 관리와 관련해 관리비용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경비원을 줄이고 시설직원을 감원하며 500세대 미만 단지에서는 심지어 경리와 소장을 겸직하게 만드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20년 10월 발생한 인천 모 아파트 여소장 피살사건의 경우 사무실에 다른 직원이 상주했다면 무고한 생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었을까? CCTV를 증설하고 통합 관제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인건비 줄이기에 혈안이 돼 사실상 인력경비가 태반이었던 시절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는 선배 주택관리사들의 경험담이 체감으로 와닿는다.

공동주택의 보안을 위해 시공부터 자동화 시스템이 적용되기 시작한 이후 인력에 의존하던 예전의 공동주택 경비시스템이 점차 기계 경비화돼 이웃 간의 정은 커녕 자칫 정서만 와해되는 듯하다. 또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폭행, 애완견 소음, 흡연, 주차, 외부차량 출입 문제 등에 따른 감정 다툼에 벌어지는 폭력(언어폭력 포함) 등 범죄는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적어도 필자의 기억으로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당시 인력경비를 위주로 하던 때여서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면 자신의 집 열쇠와 가방을 경비초소에 맡겨두고 놀이터가 복작거렸던 시절이 기억난다. 또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의 장바구니를 들어 승강기까지 들어다 주는 경비원의 모습과 지정된 순찰을 통해 불량청소년을 계도하는 등 관리비용에 충분히 버금가는 역할을 하고 당시에는 오히려 현재만큼 범죄나 사건 사고가 덜했던 것이 떠오른다.

공동주택 관리 분야는 관리비를 통한 고용 창출의 장이 되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나눔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직원은 줄이고 문은 걸어 잠그고 외부인을 냉대하며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 관리사무소의 책임만을 묻는 억측 시대에 공동주택에서 ‘이상동기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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