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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숲속에 사는 야생동물을 어떻게 봤고 숲과 야생동물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져 왔을까? 우리나라의 전통적 자연관은 건국 신화를 기록한 삼국유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 때 화랑의 실천 강령 중 살생유택(殺生有擇)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루는 데 때와 장소를 가려서 어질게 판단하라”라는 것으로 때와 장소를 가려 생물의 목숨을 다룰 것을 당부했고 이는 이후 고려, 조선의 역사적 기록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다. 특히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 산야에서 야생동물과 미물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도록 왕명으로 금한 사례도 있었다. 우리 민족의 자연에 대한 인식은 땅과 흙을 존중하는 오랜 농경생활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의 땅은 산지가 발달해 있고 그 아래에 계곡과 하천, 그리고 평야가 펼쳐진 지형이 뚜렷하다. 땅과 흙이 숲에서부터 비롯됐듯이 사람도 숲속에서 나서 숲을 보고 자라며 숲 가운데 묻히는 운명을 타고나는 것으로 믿어 왔다.

예로부터 우리 땅의 수려함은 금수강산으로 표현됐고 두꺼비, 구렁이, 제비, 꿩, 노루, 토끼, 여우, 호랑이 등 헤아릴 수 없는 야생동물이 우리의 옛 이야기 속에 삶 속에 등장했다. 우리의 강산에 뛰노는 야생동물은 언제나 자유롭고 풍요로운 자연으로부터 충분한 먹이로 균형있는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건강을 갖춘 아름다움 야생동물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농번기에는 종다리, 뜸부기, 물오리 들이 논과 밭에서 함께 살았고 집 안의 처마 밑에는 제비, 과실나무에는 까치가 사람과 어울려 살았다. 야생동물의 번식이 끝난 후 농한기에는 천렵이 가능했고 천렵으로 잡아들인 동물을 장터에 내다 파는 것은 직업적인 포수가 아니고는 커다란 수치로 여겼다. 토끼몰이, 노루몰이는 마을 공동의 축제를 준비하기 위함이고 이때도 훗날을 위해 동물의 일정한 ‘도망길’을 둬 씨를 말리는 일은 금했다.

우리의 옛 문화 가운데 독특한 하나는 희귀한 야생동물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것이다. 희귀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인식은 풍자와 해학으로 보는 관점과 동경과 상징적 대상물로 보는 관점이 있었다.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 등 우리의 설화와 민화 속에 우리 민족과 친근한 모습으로 야생동물은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호랑이는 권력과 세도의 상징으로 표현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생활풍속에 함께 있었다. 전국 곳곳에 호환(虎患)이 있었던 시절에도 늘 정의로운 편에 도움을 주는 동물로 여겨왔으며 위험이 닥쳤을 때 사람을 구해 주는 의로운 동물로 인식됐다. 호랑이를 비롯한 야생동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이러한 관점은 호랑이의 서식지인 산과 자연에 대한 늘 겸허하고 조심스럽게 대할 수 있는 심성을 갖추게 했다.

희귀한 대형조류는 행운과 장수의 상징으로서 동경의 대상이 됐다. 두루미를 특히 선학(仙鶴)이라고도 하며 신선처럼 귀하게 여겼고 고아한 자태와 품위를 관리와 선비들이 본받으려 했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 문부백관의 흉배에 두루미 모습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고귀한 존재로 여겨왔다.

야생동물은 인간과 야생동물의 관계, 시간, 공간 등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자연환경에서 자유로이 이동 가능하며 길들여지지 않은 척추동물(free and not tamed vertebrates)’로서 조류,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 등을 포함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
우즈베키스탄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

우즈베키스탄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는 바르후만왕 재위 시절인 7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변 길이가 11m인 정사각형 공간에 그림을 그렸는데 발굴 당시 이미 상부와 천장은 무너진 상태였다. 고구려 사신 추정 인물 2명은 서쪽 벽 오른쪽 끝에 있다. 새 깃털을 꽂아 만든 조우관(鳥羽冠)을 머리에 쓰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새 깃 두 개를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있다. 백제의 제사에서 조우관을 쓰거나 신라 금관의 내관도 두 갈래의 새 깃털을 본뜬 모양이 나타난다. 조우관을 쓴 인물이 해외 벽화에 나타날 때는 삼국 시대의 한국인으로 추정하는 것이 상식으로 돼 있다. 동양 최대 철새도래지인 낙동강 하구는 한반도의 아래에 위치하고 서해안의 갯벌을 주기적으로 왕래한 도요새류와 물떼새류를 본다면 우리 민족과 새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새는 하늘과 민심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 천지 간을 오가는 매개체로 받아들인 우리 민족의 전통적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더운 여름 곳곳에서 뱀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흔하게 우리는 개와 고양이를 만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자연에는 사람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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