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갑진년은 용의 해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이해하는데 용이라는 상상 속 동물을 사용했다. 풍수지리에서 ‘간용(看龍)’이라 함은 산줄기와 산두렁의 흐름이 평탄하게 흘러가기보다는 구불구불하면서도 힘 있게 올라가다 뻗어 내려가는 산줄기를 높게 평하는 말이다. 용이 산줄기를 타고 마을로 넘어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생기(生氣)를 전해주는 것으로 여겼다. 경기 양평군에서 남한강을 따라 강원 홍천군으로 가는 6번 도로를 타고 단월면사무소로 향하는 길에서는 용과 관련된 특별한 숲과 마을을 만날 수 있다.

70번 지방도에 있는 보룡숲은 국립산음휴양림 입구에 들어서는 초입부에 있어, 이미 휴양림에 들어온 느낌을 줄 정도로 울창하다. 보룡숲은 마을의 수구(水口)를 가리고 있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아담한 논과 밭 그리고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를 지나면 큰 느티나무가 보이고 그 뒤편에는 지금은 작지만 100년 전만 해도 꽤 큼지막했을 법한 ‘선돌’이 느티나무 뿌리 사이에 다소곳이 박혀 있다. 원래 마을 입구는 현재의 도로가 아니라 선돌을 끼고 있는 큰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보룡숲에는 5그루의 느티나무가 손을 잡고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 있고 서로 연결된 산자락에는 상수리나무숲도 있다. 논농사가 흉작일 때 구황음식으로 도토리묵을 해먹기 위해 마을의 좌청룡 산자락에 상수리나무를 심어둔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 보룡리 풍경
겨울철 보룡리 풍경

보룡숲과 보룡리는 풍수지리에서도 손꼽히는 전형적인 명당마을이다. 보룡리는 괘일산(卦日山)에서 뻗어 내려가며 이어지는 산줄기가 에워싼 마을이다. 마을 왼편으로는 좌청룡이 완만하게 내려오다가 단월면행정복지센터 근처에서 눈에 띄게 낮아지다가 70번 지방도를 가로질러 보산정(寶山亭)으로 이어진다. 마을 오른편의 우백호도 괘일산의 산줄기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오다가 이웃한 도룡골로 향하는 지점에서 완연하게 낮아지다 다시 마을 입구로 내달려서 부안천(富安川)에 이른다.

보룡숲과 보룡리의 원경
보룡숲과 보룡리의 원경

마을 중심에서 비룡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보이는데 그 이름이 재미있게도 ‘수리수리재’다. 이 마을은 용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아직도 연못이 하나 남아있는데, 없어졌던 연못을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 영조 때 이곳에 무안박씨 부자(務安朴氏 富者)가 살았는데 가노(家奴)의 잘못으로 화(禍)를 입게 되자 종들을 남김없이 죽이려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산속으로 도피(逃避)하다가 도사(道師)가 된 후 죽은 종들의 한(恨)을 풀고자 이 연못에 사는 청룡(靑龍)·황룡(黃龍)을 없애기 위해 소금 100석을 뿌리자 청룡은 현재 보산정으로, 황룡은 봉황정으로 각각 가버렸다고 한다. 용이 떠나자 가문은 쇠퇴했고 뒷날 무안박씨 일문(一門)이 재성(再盛)하자 두 용이 다시 이곳 연못으로 옮겨오도록 기원하기 위해 박수봉(朴壽奉)이 연못을 건조했다고 한다.

청룡과 황룡이 그려진 보산정 정자 지붕 내부 모습
청룡과 황룡이 그려진 보산정 정자 지붕 내부 모습

이 지역은 용문산, 비룡리, 보룡리, 용두리, 수리수리재 등 모두 용과 관련된 지명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의인화하는 것은 자연을 신성하게 여기고 이를 자신들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풍수에서는 의인화한 자연에 의미를 부여해 생성하고 소멸하는 생기(生氣)로 인식하고 자신들의 삶과 공간에 길흉화복을 가져다주는 원리로까지 받아들였다. 새해가 밝을 때 우리는 그해를 상징하는 동물의 의미를 생각해보곤 한다. 올해 갑진년 청룡의 해에는 우리 모두 청룡의 생기를 잘 받아 활기차고 힘차게 생활해 보자.

선돌이 끼어 있는 느티나무의 모습
선돌이 끼어 있는 느티나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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