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생활연구소 김정인 연구위원
주생활연구소 김정인 연구위원

작년 이맘때쯤 미국 대통령의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서양의 격언을 인용했다.

‘못 하나가 빠지는 바람에 편자를 잃고 편자가 없어 말을 잃었다.’ 말이 없으면 기수를 잃고 메시지를 전달받지 못해 전투에 패하고 왕국이 망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내용이다. 이 불행한 일들은 결국 못 하나 때문에 사소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초기 조건의 사소한 차이가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기본부터 충실하라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말을 타기 전에 말발굽의 편자를 점검하고 빠지지 않게 조치했더라면 어땠을까?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허무하게 일이 전개되지는 않았을 테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은 잔소리처럼 흔히 쓰인다. 학생들의 학습에는 기본개념 정리, 기본기 다지기가 중요하고 요리를 할 때도 기본에 충실한 음식은 실패가 없다. 하지만 때로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더라도 시간과 노력을 좀 더 들이거나 시행착오를 거쳐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동주택의 관리에서는 어떨까. 입주민의 재산을 안전하고 가치 있게 유지하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거치거나 실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특히 공동주택의 유지관리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건물의 성능 저하를 촉진하게 되고 이는 거주자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공동주택 관리를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업무가 이뤄지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기본’을 갖춰야 하고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공동주택이 완성되고 입주예정자들이 입주하면서 구성해야 할 체계라고 본다. 운영체계를 만들기 위한 기본 틀은 공동주택 관리규약에서 출발한다. 공동주택 관리규약에는 일상적인 관리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체계가 모두 담겨 있다. 더불어 지속 가능한 미래의 가치를 형성하기 위해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하는 것 또한 공동주택의 중요한 초기 조건들이다.

이러한 초기 조건의 설정은 과연 누가 하는가? 현행 법령상 공동주택에서 제정해야 하는 초기관리규약은 지자체의 관리규약 준칙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고, 장기수선계획 또한 인허가를 위해 사업주체가 작성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초기 조건은 공동주택의 특성에 부합하기보다 신규 입주 공동주택이면 거의 동일하게 설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조건이 거의 동일하다 해도 공동주택의 운명은 이후에 관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 분명하다. 입주자의 무관심과 관리주체의 역량 부족은 심각한 관리 부진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충분한 역량을 가진 관리주체와 입주자가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말을 타고 먼 길을 출발하기 전에 새로 박아온 편자의 못을 점검하는 효과와 같을 것이다. 공동주택 관리의 바람직한 방향을 위해 기본 중의 기본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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