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석 교수와 함께 하는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케브랑리 박물관 후면의 수평적 모티프들과 수직적인 에펠탑
케브랑리 박물관 후면의 수평적 모티프들과 수직적인 에펠탑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의 건립과 생존

에펠탑이라고 하면 누구나 프랑스 파리가 생각날 것이다. 이 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의 입구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됐다.

건립 당시에는 아직 인간이 세워보지 못한 300m 높이에 무게가 7000t인 이 탑이 제대로 세워질 리가 없다는 우려가 컸다.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궁, 앵발리드, 개선문 같은 기존의 파리 대표 명물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건축보다는 토목공학에 어울리는 구조재로 여겨져 고상한 건물의 외관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거대 연철 구조물의 그림자를 20년 동안 잉크 얼룩처럼 늘어뜨릴 흉물로 여겨져 유명인사들이 건립 반대 위원회까지 조직했다.

쇠라가 1889년에 점묘화법으로 그린 에펠탑
쇠라가 1889년에 점묘화법으로 그린 에펠탑

에펠탑이 세워진 후에는 시인 아폴리네르, 화가 쇠라와 뒤피의 예술 작품 소재가 되는 등 호의적 반응이 일었다. 박람회 기간인 5개월 25일간 국내외 방문객 190만명이 박람회의 오프닝과 클로징을 알리는 대포를 쏜 이 기적의 탑에 올랐다.

오늘날의 에펠탑 모습
오늘날의 에펠탑 모습

주변에 변변한 산이 없는 평지인 파리에서 에펠탑은 마침 발달하기 시작한 무선통신을 위한 안테나 설치 장소로서의 실용성도 더해져 20년 사용기한이라는 당초 기획과는 달리 그 이후에도 해체를 모면했다. 1930년 뉴욕에 크라이슬러 빌딩이 세워지기 전까지 41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구조물이었던 에펠탑에 1957년에는 20m 높이의 텔레비전 송신탑이 추가되고 기상대와 항공연구소도 입주해 다시 한동안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다.

케브랑리 박물관의 전시품
케브랑리 박물관의 전시품

최신 뮤지엄 안의 토속 문화

파리를 넘어 프랑스의 명물이 된 에펠탑 바로 옆에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 예술과 문화를 보여주는 케브랑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이 들어섰다.

앙드레 말로, 앙드레 브르통,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지식인과 과학자들이 프랑스 식민지에 사는 토착민들의 예술과 문화를 전담하는 뮤지엄을 짓자는 주장과 함께 아프리카 조각을 유난히 좋아했던 파리 시장 자크 시라크가 1995년에 22대 프랑스 대통령이 되면서 실행에 옮겨졌다.

전임자인 퐁피두 대통령이 퐁피두센터를,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이 오르세 미술관을, 미테랑 대통령이 그랑 루브르를 남긴 것처럼, 시라크 대통령에게 이 박물관(풀네임이 케브랑리 자크 시라크 박물관이다)은 자신의 중요한 치적 중 하나였다.

에펠탑의 수직성에 반응한 케브랑리 박물관의 수평성

건축가 장 누벨은 아찔한 높이의, 좌우대칭으로 정적이고 고전적인 에펠탑 옆에서 이웃한 센 강을 따라 휘어지며 에펠탑을 향한 운동감을 보이는 195m의 예외적으로 긴 선형건물을 제시했다.

이 전체 길이를 보여주는 긴 옥상 난간 아래에는 그 흐름을 따라, 하나로 통합된 넓은 내부 전시공간의 외곽에서 특정 전시물들을 위한 방(booth)가 되는 24개의 크고 작은 다색채 육면체 돌출부들이 매달려 본체의 연속성과 운동감을 부각시킨다. 긴 건물의 중간부 아래도 들려 있어 에펠탑으로의 수평성을 재차 보여준다.

박물관을 들어서며 맞이하는, 강변도로와 대지경계선 사이에 서 있는 높이 12m, 길이 200m의 긴 투명유리 스크린에서 먼저 경험한 수평성이 계속 반복돼 나타나는 것이다. 들린 볼륨 아래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산 후 뒤쪽 에펠탑 쪽에 있는 박물관 주입구로 가며 만나는 박물관의 뒷면 외벽에도 차양 등 수평적 모티브가 전면적으로 적용돼 에펠탑을 향한 수평적 인상에 호응한다.

탑 하중을 지면으로 내려보내는 자연의 힘 흐름을 명확하게 시각적으로 구현해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수직석 곡선을 지닌 에펠탑을 향해 나아가는 수평적인 케브랑리 박물관의 유연한 곡선은 센강의 굽은 흐름을 따른 것이어서 정직하다.

현대 건축의 혼성적 면모 표출

케브랑리 박물관은 현대 뮤지엄들 중 형태나 공간, 재료의 분절화를 통해 각가지 단편을 모아 제시함으로써 뮤지엄을 고급문화의 성채에서 내려와 대중성을 북돋우는 유형에 속한다. 여기에서 보이는 팝아트, 패러디, 콜라주 기법은 에펠탑과의 연관성 중에서도 이 박물관의 현대성을 돋보이게 한다. 다색채의 잡종적이고 혼성적이며 유쾌하기까지 한 효과가 읽힌다. 앞서 말한 대형 유리 스크린, 박물관 안마당의 나무들이 만든 공간적 켜, 여기저기 보이는 슈퍼그래픽, 서로 다른 형태와 재료와 색채의 병치, 휘장과 영상, 직사광과 반사광, 그림자 같은 오락공간에서 쓰이는 여러 기술의 활용 등 이 박물관은 복잡하고 지형학적으로 이질적인 요구들에 직면해 안팎으로 현대 건축의 혼성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케브랑리 박물관 정원의 물과 수생식물
케브랑리 박물관 정원의 물과 수생식물

친환경적 생태건축

조경가이자 작가인 클레망이 계획한 야생적인 정원은 정령을 숭배하는 과거 문명에 내포된 자연 생명을 향한 정중한 태도를 우리의 환경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보호하려는 생태학을 향한 현대의 마음가짐과 결합하고자 시도한다. 정령 숭배적 사회는 물질적이기보다는 영적이다.

서양에서 정점을 맞은 물질주의는 자연을 경시하며 상품화한, 자연과 멀어진 사회에서 비롯됐다. 정령 숭배적 사고를 앙양하는 이곳의 정원은 연극이나 오페라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하는 박물관의 장식적이고 극적인 현대 건축적 특성과 어우러지면서 과거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국적인 미학을 풍겨 역사의 무게를 감당하는 데 조경으로 기여한다.

케브랑리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이 근무하는 센 강변 건물의 외벽을 덮은 넝쿨식물
케브랑리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이 근무하는 센 강변 건물의 외벽을 덮은 넝쿨식물

박물관의 에펠탑쪽 단부에 있는 큐레이터들을 위한 건물 외벽 전체를 덮은 넝쿨 식물은 건물을 변장시키는 식물의 힘을 고양하며 이 박물관의 친환경적 면모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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