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석 교수와 함께 하는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대성당과 박물관의 별스러운 만남

쾰른 대성당 항공 사진. 우측에 정사각형 평면의 로마게르만박물관이 근접해 있다.
쾰른 대성당 항공 사진. 우측에 정사각형 평면의 로마게르만박물관이 근접해 있다.

하루 평균 2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쾰른 대성당은 독일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높이가 157미터인 두 개의 정면 쌍둥이 첨탑은 전 세계 대성당들 중 두 번째로 높고 정면 파사드는 제일 크다. 1248년에 건설이 시작됐으나 1473년에 중단됐다가 1840년에 공사가 재개돼 40년 후에 완성됐다. 이 대성당은 모산 미술(Mosan Art)의 절정이자 서양에서 가장 큰 성유물함으로 여겨지는,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러 간 3인의 동방박사 뼈가 들어 있다고 믿는 ‘삼왕의 신궁(The Shine of the Three King, 1180-1225)’을 수용하고 신성로마제국의 경배 장소로서의 역할에 걸맞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쾰른 대성당의 높은 제단 뒤편에 위치한 삼왕의 신궁
쾰른 대성당의 높은 제단 뒤편에 위치한 삼왕의 신궁

‘특출한 본질적 가치를 지닌 걸작’으로, ‘중세와 현대 유럽 기독교 신앙의 강인함과 끈기에 대한 강력한 증언’으로 인정받아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대성당 남측에 불과 12미터 떨어져 낮고 단순한 육면체의 로마게르만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하늘로 치솟는 상승감과 정교한 디테일의 위용으로 건축 교향곡이 된 대성당에 바짝 붙어 수평적이고 무표정하고 익명적인 박물관이 무심하게 들어선 것이다. 형상적으로 특이한 조합도 신기하고 왜 박물관이 이렇게까지 대성당에 근접하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뜻밖에 발굴된 디오니소스 모자이크

쾰른 대성당 바로 옆에서 발굴된 디오니소스 모자이크
쾰른 대성당 바로 옆에서 발굴된 디오니소스 모자이크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수세에 몰린 독일의 대도시 쾰른은 연합군의 공격에 고전했다. 도시는 쑥대밭이 됐고 14번의 공습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대성당의 쌍탑은 폭격에 나선 연합군 비행기의 항공지표 역할을 했다. 다급해진 독일군은 성당 바로 옆에 방공호를 팠는데, 뜻밖에 거기서 3세기에 지어진 빌라가 발굴됐다.

이 빌라의 식당 바닥은 북유럽에서 발견된 모자이크 중 가장 뛰어난 디오니소스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었다. 약 70평방미터 넓이에 100만개 이상의 석회암, 도자기,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진, 사랑의 신 큐피드와 목신인 팬(Pan), 댄서들,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염소인 세트리스(Satrys)와 식탁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삽화들로 둘러싸인 채 술에 취해 있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묘사한 이 모자이크는 4세기에 빌라가 게르만족에게 약탈당할 때 불에 탄 잔재가 그 위에 떨어지며 보호 덮개 역할을 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18년이나 지나 임시 보호 중이던 이 모자이크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 그 자리에 고대 로마의 유물을 다량 소장하고 보여주는 고고학 박물관 신축이 시작됐다. 로마 식민지의 중심지였던 쾰른의 대성당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33년 전의 일이지만 건축가는 이미 독일의 핵심 문화재였던 대성당 옆에 건립될 새 박물관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어려운 임무 앞에서 막막했다.

르코르뷔지에의 무한성장박물관 개념도
르코르뷔지에의 무한성장박물관 개념도

반대 이미지의 대비를 통한 상호 부각

높이와 정교함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쾰른 대성당에게 대항할 수 없고 대들어도 안 되며 또한 주눅 들어서도 안 될 박물관 계획을 위임받은 건축가는 근대 건축의 대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30여 년을 연구했던 ‘무한성장박물관(Musée à la croissance illimitée)’ 개념을 빌렸다.

로마게르만박물관 외관
로마게르만박물관 외관

로마게르만박물관 구상 당시에 이미 아마다바드(아마다바드미술관, 1952-56)와 도쿄(국립서양미술관, 1957-59)에 이 개념을 따른 미술관이 완공됐고 찬디가르(찬디가르 주립미술관, 1964-68)에서는 건설 중이어서 건축주인 쾰른시를 설득하는 데도 유리했다. 이 개념은 세계적인 대공황기였던 1930년대에 처음에는 10만 프랑스 프랑을 들여 가로세로 14미터의 복층 높이 중앙 전시실부터 만든 후 자금이 준비되는 대로 1층의 기둥들 위에 얹힌 2층 전시공간을 중앙 전시실 주변에 나선형으로 덧붙여 점점 커지는 뮤지엄을 만들고자 했다. 이 개념이 가진 건축적 특성으로 인해 쾰른 대성당에 근접한 박물관으로서 반대의 이미지지만 상호 갈등을 일으키지 않은 채 서로를 돋보이게 하며 새로운 건물로서의 정체성도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도쿄의 우에노 공원 안에 건립된 르코르뷔지에의 국립서양미술관 정면
도쿄의 우에노 공원 안에 건립된 르코르뷔지에의 국립서양미술관 정면

그 결과, 원형 기둥들 위에 얹힌 단순한 육면체 볼륨의 낮은 수평성, 확장될 때면 헐어야 할 임시 벽이기에 무표정할 수밖에 없는 외벽의 평탄함이 대성당의 정반대되는 건축적 특성과 겨루지도 따르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박물관의 수평적으로 길고 평탄하며 불투명한 단순 볼륨은 대성당의 수직적이고 요철이 두드러진 외관과 극적으로 대비되며 광장에 안정감을 준다. 박물관의 석재 외피는 대성당과의 연계성을 도모한다. 1층 기둥들 위에 얹힌 단순한 상자형 건물이라는 전형적으로 근대적인 양식으로 제안된 로마게르만박물관은 고대 로마부터 고딕까지의 유물을 담아 쾰른 역사의 합류점이 됐다.

로마게르만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로마 시대의 유리제품들
로마게르만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로마 시대의 유리제품들

로마와 중세의 보석뿐만 아니라 로마의 정교하고 화려한 유리제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이 박물관은 구태여 닮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고전과 현대의 건물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면서 잘 어우러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로마게르만박물관의 내부 전시공간
로마게르만박물관의 내부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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