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석 교수와 함께 하는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메종 카레와 카레 다르
메종 카레와 카레 다르

고대 이후 현재까지 문명의 연속성

프랑스 남부도시 님(Némes)은 고대 로마와 중세의 유적들이 로마보다도 더 잘 보존돼 ‘프랑스의 로마’로 불린다. 이곳의 원형경기장은 현재 남아 있는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들 중 가장 양호하다.

님의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
님의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

님의 터전을 잡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들인 가이우스와 루키우스 카이사르에 헌납된, 1세기 초에 지어졌음에도 역시 현존하는 고대 로마 신전들 중 가장 온전한 메종 카레(Maison Carrée),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퐁뒤가르(Pont du Gard)로 잘 알려진 님 인근의 고대 로마 수도교 등 로마 문명을 증언하는 다수의 유적들과 이런 고대 예술과 그 장식에 영감을 받은 12세기의 대성당, 16~17세기의 대저택, 19세기 공공 건축물 등이 있는 님은 서구에서 고대 도시문명의 가장 완벽한 증언 중 하나로서 후대 도시계획과 건축에 미친 지속적인 영향을 증언한다.

이렇게 이천 년 시간의 격차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온 독특한 면모 덕분에 “현대의 고대문명(l’Antiquité au Présent)”이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님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돼 최종 등록을 기다리고 있다.

카레 다르와 메종 카레를 하나의 대지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건축가 포스터의 스케치
카레 다르와 메종 카레를 하나의 대지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건축가 포스터의 스케치

고전적 장소에 선 하이테크 건축가

님의 구도심에 현대미술과 매스미디어 자료관으로서 예술 광장을 의미하는 카레 다르라는 현대 건축물이 메종 카레를 정면에 두고 들어섰다.

포스터 건축의 기술지향성을 보여주는 처킨 빌딩
포스터 건축의 기술지향성을 보여주는 처킨 빌딩

영국 건축가 포스터(Norman Foster)는 여기서 카레 다르가 들어설 부지만이 아닌 작은 광장 건너편에 있는 메종 카레까지 합쳐 자신이 숙고해야 할 대지로 여기고 둘 간의 대화와 조화를 위해 수십 번의 계획안 수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포스터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하이테크 건축가들 중 한 명이다. 구조미를 한껏 뽐내는 홍콩 상하이은행 건물이나 원추형의 처킨 빌딩(Churkin Building, 런던) 같은 작품은 그의 기술 지향성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포스터 건축의 진면목은 그의 문화적 용도의 건축 작품들 대부분이 자리 잡은 장소의 맥락과 잘 어울리고 지역성에 충실하다는 점에 있다.

장소에서 태어난 건축

님에서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을 둘러보고 메종 카레를 향한 길 양편에 도열해 터널을 이루는 키 높은 나무들이 늘어뜨린 짙은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주변의 묵직한 석조건물들과는 판이한 가볍고 투명한 상자형 유리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한정된 대지 넓이에 비해 많은 프로그램을 담아야 할 연면적을 감안하면 주변 건물보다 두 배 높게 솟아올라야 했을 현대 건물이 희한하게도 기존의 스카이라인을 존중하며 산뜻하게 서 있다. 존중해야 할 과거와 공존하기 위해 발동된 조처가 효력을 발한 덕분이다.

카레 다르는 높이의 절반을 지면 아래로 내렸다. 9층 건물의 아래 5개 층이 지하로 내려갔는데, 이 발상은 프랑스에서 가장 더운 님 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겨울의 쌀쌀한 북풍을 견디기 위해 중정을 지닌 님의 전통주거 양식에서 힌트를 얻었다.

카레 다르의 지하 2층까지 유입되는 자연광
카레 다르의 지하 2층까지 유입되는 자연광

카레 다르에도 건물의 중심부에 지하 2층까지 자연광을 들이는 아트리움이 있다. 이 아트리움은 고전건축의 웅장한 중앙계단(l’escalier d’honneur)을 닮은 폭넓은 계단으로 차 있지만, 그 디딤판이 녹색의 강화유리여서 자연광이 통과해 지하 2층까지 닿는다. 지하 3~5층은 자연광 없이 환기로 충분한 영화관, 창고 등이어서 사용에 불편함이 없다. 상자형 유리 건물의 정면에서 주출입구가 그 아래에 있음을 알려주는, 주변 건물 높이에 맞춘 루버는 땅속 깊이 들어갔음에도 주변보다 약간 더 높을 수밖에 없었던 건물을 시각적으로 낮춰 이웃과 조화를 구한다. 이 루버를 지지하는 다섯 개의 금속 기둥은 1952년에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그곳에 있었던 고전 양식 극장의 열주를 기억하며 광장 너머에서 이천 년간 자리를 지켜온 까마득한 선조인 메종 카레의 코린트 오더들과 교감한다.

메종 카레에서 바라본, 화재로 소실되기 전에 카르 다르에 있었던 고전 양식의 극장
메종 카레에서 바라본, 화재로 소실되기 전에 카르 다르에 있었던 고전 양식의 극장

사라진 과거까지 되살리면서 현존하는 더 먼 과거를 현재에 이식한 것이다. 카레 다르 정면의 너비와 높이 비율은 마주 보는 메종 카레 측면의 너비와 높이 비율과 같다. 카레 다르의 외부를 감싸는 유리 표피에서 돌출된 흰색의 격자형 창틀도 인접한 석조건물들의 입면 패턴과 조화롭다.

카레 다른의 정면부
카레 다른의 정면부

존경하는 이웃을 향한 흠모의 눈길

4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카레 다르에서 유일하게 메종 카레를 향한 정면만 전면 투명유리여서 1층의 넓은 홀과 지상부의 여러 층을 잇는 넓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 투명유리를 통해 메종 카레와의 교감은 계속된다. 이곳에서의 건축적 행로도 메종 카레를 만나며 마감된다.

카레 다르에서 건축적 산책의 종점인 카페테리아의 외부 테라스에서 본 메종 카레
카레 다르에서 건축적 산책의 종점인 카페테리아의 외부 테라스에서 본 메종 카레

최상부 두 층에 배치된 전시실들을 돌아본 후 마지막에 닿는 카페테리아의 외부 테라스에서 방문자는 이곳의 루버가 드리우는 그늘 아래에서 고전과 현대의 간격을 단숨에 뛰어넘어 이천 년 전의 명작을 눈앞에 맞는다. 역사가 적층된 맥락과 지역성은 응고된 불활성의 잔재가 아니라 거기서부터 새롭게 시작돼야 할 믿음직한 지침이다.

이 지침에 충실한 카레 다르는 새것을 지음으로써 기존이 훼손되거나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존재가 이웃의 특성을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상생의 건축을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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