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석 교수와 함께 하는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루트비히 미술관
루트비히 미술관

쾰른 대성당과 라인강 사이에서

지난해 12월에 쾰른 대성당의 남측 광장에 대성당과 불과 12m 떨어진 채 건립된 정사각형 평면의 로마게르만 박물관을 소개한 바 있다.

근대건축의 주요 특성인 수평성과 단순함으로 고딕 대성당의 수직성과 정교함에 대응했던 이 박물관의 동쪽에 폭이 불과 6m인 작은 도로로 이격된 채 쾰른 대성당의 뒤편으로 37m 떨어진 곳에 루트비히 미술관(Ludwig Museum, Peter Busmann, 1975-1986)이 들어섰다.

독일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유산인 쾰른 대성당에 이렇게 가깝게 두 개의 뮤지엄이 신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주변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대성당과 로마게르만 박물관과 함께 문화단지를 이루려는 의지가 뚜렷하다.

쾰른 대성당의 남측 광장에 인접해 건립된 로만게르만 박물관
쾰른 대성당의 남측 광장에 인접해 건립된 로만게르만 박물관

대성당 광장에서 전체가 노출된 채 인접한 로마게르만 박물관의 계획안 수립 시 건축가가 느꼈을 고민 못지않게 라인강 건너편의 도시에서 대성당 뒤편 모습의 상당 부분을 가리게 될 루트비히 미술관의 계획안을 수립해야 하는 건축가의 고민도 적잖았다.

이 미술관 계획에 2000석 규모의 쾰른 필하모닉 공연장도 포함돼 있어 더욱 그랬다.

루트비히 미술관의 전시공간
루트비히 미술관의 전시공간

대성당 가림의 최소화를 위해

필요한 넓은 연면적에 전시공간의 층고가 높고 쾰른 필하모닉까지 수용해야 하니 한정된 대지에서 덩치가 클 수밖에 없어 강 너머에서 보이는 쾰른 대성당의 뒷모습을 가리는 우려가 대두됐다.

이런 장소에 미술관이 대규모로 기획된 데는 여기에 발라프 리하르츠 박물관(Wallaf-Richartz Museum)도 함께 입주하는 것으로 예정됐었기 때문이다. 두 큰손 기부자의 이름을 따 발라프 리하르츠 박물관에는 중세 시대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작품을, 루트비히 미술관에는 20세기 작품의 전시를 맡기로 했던 것이다.

루트비히 미술관의 주변 전경
루트비히 미술관의 주변 전경

준공 후 여러 매체에 소개될 때 두 미술관의 이름이 혼용된 이유인데 2001년에 발라프 리하르츠 박물관이 쾰른 시청 인근에 새 건물을 지어 나감으로써 지금은 루트비히 미술관만 남게 됐다.

대성당 본체 대부분을 가릴만한 규모의 신축 미술관을 대성당에 붙여 지으면서 건축가는 지난해 10월에 소개됐던 프랑스 님(Nèmes)의 카레 다르가 그랬듯이 미술관의 절반을 지하로 내렸다. 쾰른 필하모닉 공연장 전체도 지하로 내려갔다. 미술관처럼 콘서트홀도 안에서 밖으로의 전망 확보가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 아닌 것이 이런 발상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루트비히 미술관과 라인강 사이에 위치한 하인리히볼 플라츠
루트비히 미술관과 라인강 사이에 위치한 하인리히볼 플라츠

이렇게 미술관의 상당 부분이 지하로 내려감에 따라 지상에서 미술관의 돌출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다. 그 결과 대성당의 광장을 연장해 새로 조성한 미술관 광장과 강변 데크를 조각가 카라반(D. Karavan)에게 맡겨 하인리히볼 플라츠(Heinrich-Böll-Platz)라는 광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아래의 공연장에서 콘서트가 진행될 동안에는 음향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광장의 통행이 일시 금지되는데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대성당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대성당의 뒷모습을 존중하는 또 하나의 조처는 이 미술관의 볼륨을 중앙부가 비워진 V자형으로 벌린 것이다. 미술관의 나눠진 두 볼륨 사이를 대성당 광장과 강변 데크를 잇는 외부 통행로로 제공하고 미술관은 그 지하에서 연결된다.

지하로 절반이 내려간 루트비히 미술관의 단면도
지하로 절반이 내려간 루트비히 미술관의 단면도

이 통과로는 라인강을 건너는 호엔촐레른 (Hohenzollern) 철로에 붙어 있어 다수의 시민과 관광객이 도보로 건너다니는, 사랑의 언약 자물쇠가 빽빽하게 달린 인도교로 연결돼 강 건너로부터의 전망을 확보하고 미술관과 대성당으로의 접근을 쉽게 한다. 대성당은 이렇게 갈라진 볼륨 사이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루트비히 미술관의 벌어진 틈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쾰른 대성당
루트비히 미술관의 벌어진 틈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쾰른 대성당

동조(同調), 닮음으로 보조 맞추기

이렇게 루트비히 미술관은 계획 전반에서 쾰른 대성당을 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이 인정을 받아 설계공모전 때 세계적으로 쟁쟁한 다른 건축가들을 물리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건축가가 당선됐다. 이 미술관은 여기에 더해 최상층 전시공간에 자연광을 끌어들이기 위한 채광 시스템을 고안하면서도 대성당을 의식했다.

루트비히 미술관의 천창 시스템
루트비히 미술관의 천창 시스템

도시적 전경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분절된 채 은회색 금속이 씌워진 큰 지붕과 그 위의, 대각선적으로 층층이 쌓인 다수의 천창 시스템(라인강에서 봤을 때는 그 측면이 보인다)이 대성당의 탑과 첨탑, 버팀벽, 플라잉 버트레스들과 대위법으로 잘 어우러진다. 재료 측면에서도 미술관의 금속 지붕과 대성당의 석재 벽체, 금속 지붕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이 미술관의 천창 시스템은 의도에 부합하는 효과를 보인다. 라인강 건너편에서 봤을 때 수직적인 대성당의 하부에서 미술관의 지붕과 천창들이 낮게 깔렸으면서도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일련의 수직적인 물결을 이뤄 고딕 대성당의 본질적 특성인 앙천성(仰天性)에 동조한다. 과거를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도 현대적으로 용도까지 감안하며 닮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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