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한낮이 가장 길었던 하지(夏至)를 지나서 이제 동지(冬至)에 이르며 밤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밤은 꺼지지 않는 건물의 빛과 등(燈)이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면서 다소 축제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일까? 도시의 밤은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시간의 연장이고 이는 곧 도시민들의 삶이 쉼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긴 밤은 종종 시련의 시간으로 묘사된다. 앙리 샤리에르 소설 ‘빠삐용’에서 주인공 빠삐용이 탈옥에 실패한 후, 빛이 차단된 독방에서 보낸 시간과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의 애국지사들이 보낸 무수한 어둠의 날들은 어둠이 주는 시련과 고통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어둠과 반대되는 ‘빛’은 희망과 생명을 상징하고 다양한 빛축제나 도시 밤경관의 화려함은 도시민들의 이러한 소망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도시의 다리, 호수, 도로 등 도시의 회색 공간뿐만 아니라 산성, 산책로, 화단 그리고 가로수는 빛 장식으로 치장된다. 유명한 빛축제인 진주유등축제와 서울빛초롱축제도 이때쯤 시작된다. 이러한 등축제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인도의 한 여인이 힘든 상황에서도 등불을 구하기 위해 구걸을 하다가 기름 장사하는 이에게 부탁해 마음의 등불을 구했고, 석가모니 앞에서 그녀의 등불만 계속 타올랐다고 전해진다. 아시아 지역에서 등축제의 등불은 곧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도시의 빛은 ‘빛 공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될 정도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겨울철 도시의 야경은 검은색 도시숲과 오색 불빛으로 나뉜다. 도시숲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해 조명 관리도 필요하지만 강한 불빛과 수목에 과밀한 전구의 접촉은 안전사고의 위험을 높이고 도시생태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00년에 장식 전구의 수목 피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장식 전구는 보통 26~300 Lux로, 수목에 대한 물리적인 영향은 적었으나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2월 말에는 전구를 제거하고 정리할 것을 권했다. 현재 흔하게 사용되는 장식 전구의 LED 빛은 최대 100Lux로 이하로, 수목에 대한 피해는 크게 없었다. 하지만 사용시간에 따른 영향 정도를 파악한 결과 6시간 동안 사용 시 잎의 피해는 없었지만 12시간 이상 사용한 경우 소나무 잎의 호흡량이 증가했고, 미미하지만 잎의 열 피해도 일부 확인했다.
최근 빛의 세기가 약한 은은한 가로수길보다 과다하게 밝은 가로수길이 많아지고 있어 수목에 대한 피해가 더 많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빛 공해는 생물의 생리 리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인간의 과도한 빛 사용으로 겨울잠을 자는 야생동물들이 영향을 받고 야간에 잠자리로 되돌아오는 새들에게는 경로 선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또한 식물은 빛 공해로 오히려 잎을 더 키워 성장하거나 꽃을 피우기도 한다. 낮은 조도에서도 광합성이 가능한 덩굴식물은 도시의 빛으로 덩굴을 확장한다는 국외 연구 결과도 있다. 원래 짧아진 빛줄기에 대응해 생물은 ‘쉼’이라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생존 전략을 취해왔다. 봄을 위해 자연의 모든 생물이 겨울 동안 ‘쉼’을 가져야 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식물들은 빛으로 인해 자연의 순환을 따라가지 못한다.
도시는 공간의 속성상 밝은 도시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나무와 숲에 빛을 많이 사용하지만 내년을 위해 숲과 나무도 휴식이 필요하다. 빛으로부터 자연이 쉴 수 있다면 더불어 도시민들도 밤에 양질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12월을 보내며 빛에서 조금 떨어져 소박하고 충분한 쉼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새해의 소망을 빌어보자.
관련기사
- [박찬열의 숲과 삶] 숲속 도시, 실리콘밸리에서 꿈꿔본 나의 소원
- [박찬열의 숲과 삶] 낭만적인 도시, 건강한 도시의 지표, 낙엽이 되려면
- [박찬열의 숲과 삶] 다람쥐의, 다람쥐에 의한, 다람쥐를 위한 도토리나무
- [박찬열의 숲과 삶] 추억을 부르는 솜사탕 나무
- [박찬열의 숲과 삶] 채움을 위한 비움, 단풍나무
- [박찬열의 숲과 삶] 올해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토끼처럼
- [박찬열의 숲과 삶] 봄의 희망을 품은 겨울눈처럼
- [박찬열의 숲과 삶] 동백나무와 동박새
- [박찬열의 숲과 삶] 문안견매(聞雁見梅), 기러기 소리를 듣고 매화 향을 보니
- [박찬열의 숲과 삶] 버들강아지 피고 도롱뇽알 붙이는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