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지난주 자전거를 타고 춘천을 향해 달리다가 농촌 들녘에서 깻단을 터는 사람들을 보았고, 내가 있는 곳까지 날아오는 깻단 냄새에 달리던 자전거를 잠시 멈췄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가을 들녘에서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곤 했는데, 힘든 와중에도 형제들과 깻단에서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들깨와 꿀단지는 어린 자녀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이 준비했던 겨울 비상식량이었지만 몰래 먹으려다가 꿀단지를 깨 먹고 혼났던 기억도 났다. 때때로 냄새는 우리의 기억을 소환하는데 어떻게 우리의 대뇌 피질에 그러한 냄새와 기억의 정보가 박혀 있는 것일까? 대양으로 나간 연어가 알을 낳으러 다시 숲의 계곡으로 돌아올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는 계곡의 냄새라고 하는데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홍릉숲의 계수나무
홍릉숲의 계수나무

가을날, 홍릉숲에서 산림과학관으로 가는 길에 솜사탕 나무가 발길을 멈추게 하곤 한다. 이는 계수나무로 우리나라가 원산지는 아니고 중국에서 들어온 수종이다. 중국와 일본이 원산지이고, 북미와 유럽에서도 약 기원전 258만년 전인 홍적세 시기에 멸종됐지만, 다시 도입해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미국에서는 ‘케러멜 나무’, 독일에서는 ‘케이크 나무’, 우리나라에서는 ‘솜사탕 나무’라는 재미있는 별명을 갖고 있다. 가을이 되면, 하트 모양의 나뭇잎은 자두색이나 녹색에서 버터를 바른 노란색으로 바뀌면서 엽록소의 풋풋한 냄새는 사라지고 제과점의 설탕향이 나기 시작한다.

계수나무
계수나무

이 계수나무의 잎에서 풍겨나오는 달달함은 말톨(maltol)이라는 화합물이 잎에 담겨 있어서 그렇다. 말톨 농도는 봄과 여름에는 낮지만 가을에 나뭇잎이 바래기 시작하면서 말톨이 설탕이 든 분자와 짝을 이루면서 그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기 시작한다. 그 화학작용은 갈색 잎에서 가장 향기롭고 일주일 정도 지속된다. 대부분 식물들은 설탕에 결합된 분자들을 저장하는데 공기중으로 방출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사람은 특정 분자가 코로 들어갈 때 냄새를 감지하고 수용체가 눈 뒤에 있는 뇌의 후각에 전기 신호를 보내서 신경 뉴런을 작동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후각은 외모만큼이나 개인적이고 다양하다. 우리는 각각 특정한 향에 순응할 수 있는 수용체의 배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이 손상되거나 혹은 너무 적거나 완전하지 않을 때는 그 향기를 맡을 수 없다.

만약 향기가 감지되면 일련의 신호는 대뇌 피질, 그리고 감정을 생성하고 기억을 떠올리거나 만드는 대뇌의 변연계(邊緣系)에 전달된다. 뇌에서 냄새와 연결된 감정과 기억은 이렇게 주관적으로 만들어지지만 오래간다. 하지만 나무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말톨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무는 기능적으로 휘발성 물질, 즉 냄새를 이용해 다른 식물과 소통하고, 수분매개자를 끌어들이거나, 포식자를 쫓는다. 계수나무가 말톨을 통해 왜 우리에게 냄새를 보내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혹시, 가을날 길을 걷다 은은한 계수나무의 달콤한 향기가 느껴진다면, 어린 시절 달콤한 기억 하나를 떠올려보자. 때로는 자연이 자신의 생존과 관계없이 우연히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여긴다면 가을의 단풍이 더욱 낭만적인 기억으로 또 남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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