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한겨울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추위를 뚫고 붉게 꽃을 피우는 동백꽃을 보노라면 잠시나마 봄의 계절감과 색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숲으로 유명한 곳은 많은데 우리나라 서남해안과 제주 곳곳에서 겨울이면 짙푸른 녹색 잎과 빨간 꽃을 가진 동백(冬柏)을 만날 수 있다. 필자는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과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숲, 제주 서귀포 신흥 동백나무숲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동백의 매력에 매료되곤 한다. 특히 동백나무는 겨울에 눈 속에 있을 때 그 참맛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가 있어(此木有好花)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亦能開雪裏)
곰곰 생각하니 잣나무보다 나으니(細思勝於栢)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도다(冬栢名非是)

고려의 문신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집필한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文集)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눈 속에 꽃을 피운 모습이 잣나무보다 나으니, 동백(冬栢) 또는 춘백(春栢)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동백꽃은 사랑이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엄한 겨울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기 때문에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충남 서천 마량리 동백꽃
충남 서천 마량리 동백꽃

동백이 가진 이미지와 의미는 소설과 노래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된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의 여인’<La Dame aux camélias, 1848>에서 여주인공 코리티잔이 들고 있었던 꽃도 동백꽃이었다. 이 소설은 훗날 일본으로 건너갔고 우리나라 소설가 김유정의 <동백꽃>,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제주 동백동산의 동박새와 동백꽃
제주 동백동산의 동박새와 동백꽃

동백나무는 사람들이 자주 애용해 쓰임새가 많다. 동백나무 열매에서 짜낸 기름은 머릿결 손질과 천식에도 효능이 있으며 잘 마르지도, 굳지도 않아 기계가 녹스는 걸 방지한다. 나무는 재질이 균질하고 견고해 나무방망이, 악기, 우산 자루, 다식판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해안 지역에서는 강한 바람을 막는 방풍림으로 식재하기도 한다. 사찰 주변에서도 동백나무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방화림으로서 전북 고창 선운사 등 절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동백나무 종자유의 우수한 항산화 작용과 자외선으로부터 피부세포의 보호 효과를 밝혀내 화장품에 사용할 수 있는 탄성나노리포좀 소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동백나무숲의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7.32t(헥타르, 50년생 기준)인데 이는 중형자동차 3대가 1년 동안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상쇄시킬 수 있는 양이다.

제주 서귀포 신흥리 동백꽃
제주 서귀포 신흥리 동백꽃

동백나무의 꽃가루받이는 곤충과 새들에 의해 이뤄진다. 그중 동박새가 자주 관찰되는데 이름도 동백꽃과 유사하다. 동박새는 거미류, 진드기, 달팽이류를 주로 잡아먹는다. 종종 동백나무의 꽃에서 당분을 먹다가 화분을 부리 주변에 뒤집어쓴 동박새를 발견할 수 있다. 참새보다도 작지만 추운 겨울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머리를 내밀어서 먹이를 잡는다.

제주 한남시험림의 동박새
제주 한남시험림의 동박새

동박새 영어명은 White-eye, 일본명은 ‘메지로’다. 두 개 모두 ‘눈가에 흰 테를 두르고 있다’를 의미한다. 하얀 눈테를 가진 동박새 소리는 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지만 음이 높다. ‘히링 히링’, ‘히링, 히링’하는 콧소리에 가깝다.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마냥 작은 콧소리로 무리를 형성해 같이 움직인다. 동백나무의 작은 가지와 잎에 매달리기도 하고 꽃과 잎 사이로 숨기도 하니 관찰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동백나무와 같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숲, 조엽수림(照葉樹林)에서 햇빛을 피하며 먹이를 빠르게 찾기 위해 적응한 산물로 흰색 눈 테를 가졌을 수도 있다. 동박새는 전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아름다운 산새로 종종 사육되기도 했다. 1920년경 농장의 해충을 방제하는 목적으로 미국 하와이에 도입됐으나 그로 인해 일부 고유종의 수가 감소하기도 했다.

동백꽃과 그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벌레를 잡아먹고 꽃가루받이를 돕는 동박새의 어울림을 보면서 겨울 동안 조금은 외로웠던 서로의 마음을 잘 다독이다 보면 어느새 봄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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