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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이제 나무들도 겨울을 준비한다. 무더운 여름 내내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과 깨끗한 산소를 제공해주던 나무의 초록잎은 서서히 붉게, 노랗게 변한다. 기온이 낮아지면 기러기와 흑두루미 등의 새들은 따뜻한 남쪽 나라로 이동해 겨울을 날 곳을 찾는 반면,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식물들은 잎을 떨구는 전략을 취한다. 일종의 겨울나기 다이어트인 셈이다. 식물은 더 이상 잎사귀 끝으로 물을 내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잎을 떨어뜨리고, 잎에 있던 녹색의 엽록소가 사라지면서 남아있던 붉은색, 노란색, 갈색이 나타나는 ‘단풍’의 계절이 비로소 우리에게 당도한다.

자신의 일부인 잎을 떨어뜨려야 하는 나무에게 가을은 정말 힘든 시기다. 잎으로 더 이상 물을 보내지 않으니 체내로 들어오는 양분도 줄어든다. 하지만 나무는 내년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이를 다시 양분으로 삼는 혹독한 이 과정을 수억 년간 반복하며 지금까지 생존해왔다. 잎을 떨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바늘잎나무, 소나무도 가을과 겨울에는 일부 잎을 떨어뜨리며 지구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강원도 평창 가리왕산의 단풍
강원도 평창 가리왕산의 단풍

나무는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나무가 가을을 날 수 있도록 돕는다. 떨켜층이 있어 잎이 바람에 쉽게 떨어지고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만들어 낸 녹말(탄수화물)은 이 떨켜층에 막혀 줄기로 가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뭇잎 안에 녹말(탄수화물)이 쌓이게 되고 결국 엽록소가 파괴된다. 대신 남아 있던 카로틴(Carotene), 크산토필(Xanthophyll)과 같은 색소는 노란 나뭇잎을,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라는 색소는 붉은 나뭇잎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단풍색은 붉은색, 노란색, 갈색이 있다. 붉은색은 단풍나무, 신나무, 옻나무, 붉나무, 화살나무, 복자기, 담쟁이덩굴 등이 대표적이고, 노란색 단풍나무로는 은행나무를 비롯해 아까시나무, 피나무, 호도나무, 백합나무, 생강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단풍나무과의 고로쇠와 우산고로쇠는 맑은 갈색을 나타낸다. 이뿐만 아니라 감나무는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 있어 한 단어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어렵다. 늦가을에 절정을 이루는 참나무류나 너도밤나무, 느티나무의 노란빛이 도는 갈색(Tannin 성분)도 가을 단풍의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단풍의 색깔이 이처럼 수종별로 다른 것은 각 색소의 종류와 함유량의 차이 때문이다. 카로틴은 밝은 오렌지색, 크산토필은 노란색에서 오렌지색 계열, 안토시아닌은 핑크, 빨강, 자주빛 등의 붉은색 계통으로 표현된다.

서울 홍릉숲의 단풍
서울 홍릉숲의 단풍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환경적인 인자는 온도, 햇빛, 그리고 수분의 공급이다. 우선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커야 하지만, 영하로 내려가면 안 되고 하늘은 청명하고 일사량이 많아야 한다. 특히 붉은색의 안토시아닌은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범위에서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면서 햇빛이 좋을 때 가장 색채가 좋다. 또한 너무 건조하지도 않은 적당한 습도가 유지돼야만 아름다운 가을을 즐길 수 있다. 추우면서 비가 오는 날씨에는 충분히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이 떨어져 버리고, 너무 건조할 경우 단풍을 보기 전에 잎이 타게 돼 맑은 단풍을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는 아름다운 단풍이 들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다.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지역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이는 단풍 들기에 적당한 기상 조건을 갖는 지역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외에 동북아시아 및 미국 북동부지역이 아름다운 단풍이 드는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산림청은 최근 기후 변화로, 올해는 9월 29일 단풍이 시작돼 10월 26일에 절정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단풍 시기에 대한 예측은 지난 8월의 강수량과 9월과 10월의 예상 기온을 토대로 이뤄진다. 최저기온이 5℃ 이하로 떨어지면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데, 단풍이 시작되는 시기는 9월 상순 이후, 기온의 높고 낮음에 따라 좌우된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낮을수록 단풍 시작 시기가 빨라진다.

이제 막 시작되는 아파트숲의 단풍
이제 막 시작되는 아파트숲의 단풍

바쁘다면 잠시 시간을 내 가까운 아파트숲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단풍을 즐기기 충분하다.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백두대간에서 산줄기를 따라 물든 형형색색 단풍의 풍경을 한번 바라보는 것도 추천한다. 하루하루 추워지는 날씨에 금방 겨울을 떠올리기 쉽지만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시기는 생각보다 짧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나무가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잎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이제 우리도 채우기보다는 불필요한 것들과 부정적인 마음을 덜어내고 비워내면서 올해를 잘 마무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을을 즐겨보자.

설악산의 단풍과 그 너머 이어지는 산줄기의 모습
설악산의 단풍과 그 너머 이어지는 산줄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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