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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더위를 참고 산에 오르다 보면, 에어컨 바람처럼 찬바람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만날 때가 있다. 바로 풍혈(風穴)이다. 풍혈은 바위틈 사이에 저장되어 있던 공기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더운 여름에도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분다. 풍혈은 애추(talus)라고 불리는 빙하지형으로, ‘산에서 크고 작은 바위가 넓게 펼쳐져 있는 넓은 들’처럼 보여 ‘너덜’이라고도 하며 그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온대지방에 남아있는 애추지형은 약 200만년 전 빙하기의 유물이다. 이는 빙기(氷期)에 암석 절벽에서 물이 얼었다 녹는 동결, 융해과정이 반복되면서 돌이 떨어져 나와 형성됐다.

예로부터 너덜은 민간에서 풍혈, 빙혈, 빙계계곡, 얼음골, 바람구멍 등으로 불려왔다. 너덜이 있는 곳은 주변보다 온도가 현저히 낮았기 때문인데, 이는 너덜바위 구멍에서 찬바람이 불어 나오거나 그 속에서 얼음이 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단열효과로 인해 여름철에는 겨울 동안 풍혈 내부에서 냉각된 공기가 유지돼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철에는 지층을 통과하며 데워진 따뜻한 공기 덕분에 따뜻한 바람이 분다. 일찍이 풍혈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너덜지대를 여름철 피서지로 이용하기도 했으며, 야생동물에게도 쉼터 및 서식지로 이용돼왔다.

경북 칠곡군의 너덜지대
경북 칠곡군의 너덜지대

한편 너덜지대에 형성된 서늘한 환경은 북방계 식물이 자생하기 좋은 조건이 된다. 개느삼, 월귤, 청시닥나무, 세잎종덩굴, 정향나무, 주목, 마가목 등 우리나라의 고산 또는 아고산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식물이 특이하게도 해발고도가 낮은 곳에 위치한 풍혈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다. 식물연구뿐 아니라, 식물의 생활사에 따른 독특한 동물상 유지와 같은 생물 다양성이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생물자원의 피난처로서 흥미로우면서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풍혈은 산지에서 주로 발견되며,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강원도 홍천군 내면 방내리,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덕우리,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내룡리,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등 풍혈 9개 정도가 대표적이다.

산줄기가 연결된 북악산, 창경궁, 종묘의 산림 경관
산줄기가 연결된 북악산, 창경궁, 종묘의 산림 경관

형성된 지형유물인 풍혈을 도시 외곽의 숲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원리를 차용해, 야간에 산지 계곡부에서 만들어진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도심으로 유도해 도심 내부 곳곳으로 흐를 수 있도록 연결된 숲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시외곽숲은 맑고 서늘한 바람이 생성되는 ‘찬바람유역’, 그리고 산줄기와 띠녹지대로 연결된 ‘디딤숲’으로 구성된다. 바람길숲은 산자락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돼야만 찬바람유역에서 생성된 바람이 도심 내부로 지속적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다.

아파트에 의해 산줄기 연결이 단절된 경관
아파트에 의해 산줄기 연결이 단절된 경관

하지만 토지가 귀한 도시에서 숲은 아파트와 같은 각종 개발로 인해 연결이 끊어지면서 바람길까지 막히기도 한다. 바람길숲이 있는 아파트를 위해서는 아파트 단지 계획 단계에서부터 도시외곽숲에서 아파트로 이어지는 지역의 지형과 기후, 그리고 미기상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연스럽게 바람이 통하게 된다면 풍혈에서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아파트도 좀 더 살기 좋은 보금자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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