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가 잘 아는 사람은 음치다. 노래할 때 박자와 음정을 못 맞춘다. 같이 노래 부를 때 웃지 말자고 마음먹지만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음치를 알아맞히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마지막에 가수와 음치가 같이 노래할 때는 재밌기도 하다. 자연에서도 박자를 못 맞추는 일이 있다. 올해 벚꽃 개화는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빨랐다고 한다. 꽃뿐만 아니라 잎도 빨리 나왔고 벚꽃이 피었던 기간도 짧았다. 수수꽃다리와 참나무 잎 나오는 시기도 빨라지는 등 기온 상승으로 인해 자연의 박자가 빨라지고 있다.

초봄에 나온 참나무 꽃과 잎
초봄에 나온 참나무 꽃과 잎
초봄 연둣빛 파스텔 도시숲(2023.4.9. 아차산)
초봄 연둣빛 파스텔 도시숲(2023.4.9. 아차산)

초봄에 나오는 잎은 부드럽고 연한 초록색으로 초봄의 숲은 파스텔로 칠해놓은 그림같다. 연둣빛 잎이 나오면 애벌레는 꿈틀꿈틀 기어 나와 잎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박새도 애벌레를 잡아먹는다. 보통 박새는 연둣빛 숲이 시작되기 전에 알을 낳고 2주 정도 후에 알을 깨고 나온 새끼에게 애벌레를 먹여 키운다. 이렇게 연둣잎, 애벌레, 박새 간의 상호 관계는 오랫동안 숲에서 먹고 먹히는 먹이망을 형성해왔다.

그렇지만 올해처럼 빠르게 잎이 나오게 되면 뒤이어 애벌레와 박새는 박자를 놓치게 된다. 급격한 기온 상승과 하강에 따른 엇박자(mismatch) 현상이 동·식물간의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식물은 부드러운 연잎을 만드는 연한 잎의 시기(soft leaf periods)를 가진다. 이는 모든 나무가 거쳐야만 하는 창(window period)이다. 애벌레는 연한 잎을 갉아 먹으려고 때를 맞추고 연이어 박새도 애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나타난다. 먹고 먹히는 먹이망에서 식물, 곤충, 새들 간의 상호작용은 긴밀하다.

박새도 마냥 이렇게 널뛰기하는 기온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알을 낳는 시기를 빠르게 하기도 하고 낳는 알의 수를 줄이기도 한다. 또한 두 번의 번식기를 갖기도 한다. 일부 박새는 기온이 어떻게 될지 예측을 못 하니 초봄에 기온이 오르면 바로 알을 낳기도 하지만 결국 애벌레를 많이 잡지 못해 새끼를 많이 기르지 못한다.

테니스 공 껍질을 둥지 재료로 사용한 박새
테니스 공 껍질을 둥지 재료로 사용한 박새

예측하기 어려운 도시 기후 조건에 빨리 적응하는 박새도 있다. 인공새집 실험에서 박새는 테니스 공 껍질 등 인공재료를 이용해 둥지를 짓기도 하고 빨라지는 봄에 맞춰 알을 일찍 낳기도 한다.

박새의 노랫소리도 그렇다. 박새는 번식할 때 자신의 세력권을 지키는 소리를 낸다. 수컷은 초봄에 세력권을 정하고 나뭇가지 높은 곳에서 노래한다. 박새와 박새는 서로 소통해야 하지만 시끄러운 도시에서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고음을 내거나 음조를 변조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에서 동일한 종일지라도 도시에서 사는 새는 음조가 높아진다는 것을 다수 확인했다. 서울 홍릉숲에서 조용한 지역과 시끄러운 경계 지역에서 박새 소리를 분석해 본 결과, 조용한 곳에서는 ‘스빗, 스빗’, 시끄러운 곳에서는 ‘스스삣, 스스삣’하며 변조하는 부분을 확인했다.

도시 기후에 적응하는 박새
도시 기후에 적응하는 박새

박새는 들쑥날쑥하는 기온에 적응하기 위해 빨리 나오는 잎과 부족한 애벌레를 대비해 알을 빨리 낳거나 두 번 번식하고 시끄러운 도시에서는 음조를 바꾸어서 살아간다. 특히 회색빛 도시에서 도시숲은 식물, 곤충, 새의 먹이망이 살아있는 곳이다.

이 도시숲에서 박새는 엇박과 변조라는 과정으로 변화하는 기후와 도시환경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도시숲을 더욱 자연과 가깝게 가꾼다면 박새의 소리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 먹이망이 살아 숨쉬고 나무와 숲이 풍부한 도시숲을 가꾸고 돌보자.

‘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방송 프로그램처럼 박새의 소리를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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