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볼까?] 493. 경남 하동군

유로제다의 차밭
유로제다의 차밭

하동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과 어머니의 강 섬진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장이다. 전국에서 찾아온 남녀노소 수많은 여행자로 사계절 내내 북적이는 이곳은 매해 4월이면 새하얀 벚꽃이 지천에서 장관을 연출해 말 그대로 ‘꽃 반 사람 반’이다. 섬진강에서 자란 청정 민물조개인 재첩으로 만든 다양한 요리 역시 오랜 세월 깊은 풍미로 커다란 사랑을 받는 하동의 대표 명물이다.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는 천혜의 자연으로 충분히 빛나는 하동의 명성을 더욱 지금과 같이 값지게 높여준 세계적 유산이 있으니 무려 12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차(茶)’다. 하동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로 유명했다. 1년 열두 달 내내 온화한 날씨를 기반으로 지리산의 비옥한 흙과 섬진강의 깨끗한 물이 하동의 야생차를 기른 것이다. 그중 녹차의 재배면적이 전국 대비 23%를 차지할 만큼 하동에서 녹차가 차지하는 지분은 상당하다.

특히 화개면은 2006년 3월 8일 재정경제부로부터 ‘하동야생차산업특구’로 지정돼 하동의 지역적 가치를 올리고 있다. 실제로 하동녹차는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각종 녹차와 견줄 때 성분과 맛과 품질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고급 녹차라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지리산, 벚꽃, 섬진강, 재첩 등 앞서 소개한 여러 요인 덕분에 하동은 매해 한 번 이상 방문하게 되는 곳인데 최근에는 차 문화 덕분에 하동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하동에 오면 시선을 두는 곳마다 야생차밭이 보였고, 자연스럽게 차에도 관심을 두게 됐는데 그 중심에는 하동 곳곳에 자리한 수십 년 역사의 ‘다원(다실)’이 있었다. 하동의 다원 대부분은 주인이 직접 차 농사를 짓고 차를 만들며 차와 관련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하동 다원 여행에는 오래된 친구 S를 소환했다. 4년 전 하동 화개면에 귀촌해 살아가고 있다는 S의 근황을 접하고 용기를 내어 재회의 약속을 잡았다. 학교 다닐 때 만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뜸해졌으니 장장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우리 사이에 작은 찻잔을 둔다면 시간의 간격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따신골 녹차정원의 티캠핑 바구니
따신골 녹차정원의 티캠핑 바구니

친구와 함께 첫 번째로 찾아간 다원은 화개면 부춘리에 자리한 ‘따신골녹차정원’이다. 하근수 농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1만여평 규모의 산을 야생 차밭으로 가꾼 다원으로 차나무는 물론 소나무와 진달래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름 그대로 정원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차와 다식이 든 작은 라탄 바구니를 들고 섬진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캠핑 사이트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이것이 힐링이지 싶다. 따신골녹차정원의 티캠핑 비용은 인당 1만원이다.

따신골녹차정원은 섬진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조망명소다
따신골녹차정원은 섬진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조망명소다

따신골녹차정원에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아침 티타임을 가진 뒤 두 번째로 찾아간 다원은 화개면 운수리에 자리한 ‘티카페하동’이다. 하동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하동의 차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다도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하동티소믈리에 클래스, 하동의 차에 대한 이해와 흥미의 깊이를 더해주는 하동에피소드 티 클래스, 차와 함께 명상하는 차와 명상, 차와 함께 야외에서 녹차 족욕을 즐기는 녹차족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티카페하동에서 진행하는 차와 명상 프로그램
티카페하동에서 진행하는 차와 명상 프로그램

티 클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우리가 마시는 차에 대해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다. 차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녹차 외에도 청차, 백차, 홍차, 황차, 흑차가 있으며 이는 찻잎의 발효 정도를 기준으로 나뉜다. 야생에서 얻은 찻잎은 같으나 이를 어떻게 발효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의 차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녹차의 경우 크게 우전, 세작, 중작, 대작으로 나뉘는데 이는 잎의 채취 시기와 찻잎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채취한 찻잎은 큰 잎, 묵은 잎, 줄기, 부스러기 등을 각각 가려낸 뒤 250~300°C로 뜨겁게 달궈진 무쇠솥에 덖는다. 찻잎의 수분을 제거함으로써 산화를 방지하고 발효를 억제하며 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이후 덖은 찻잎의 열기를 없애고 좋은 성분이 찻잎에 배어들도록 멍석에 놓고 비빈다. 그 다음 잎이 낱장으로 분리되도록 고른 뒤 말린다. 전통적으로 온돌방에 한지를 깔고 말리거나 채반 위에 놓고 자연 건조한다.

좋은 차를 고르려면 찻잎의 모양, 색깔, 향기 등을 확인해야 한다. 찻잎은 잎이 가늘고 광택이 있으며 잘 말려 있는 것이 좋다. 차를 우릴 때는 숙우, 다관, 찻잔, 다완 등의 다구를 활용하는데 1~1.5g의 찻잎에 70°C 내외의 물 200ml 정도를 부어 2분 이내로 우린다. 첫 번째 우린 차는 아미노산이 많아 감칠맛이 강하고 두세 번째 차부터는 카테킨 성분이 우러나 떫은맛이 올라간다. 차 명인들은 보통 가장 맛있는 차를 두 번째 우린 차라고 말한다.

한편 여러 사람이 단체로 함께 참여하는 과정이 아닌 일대일 내지 최대 4인 내외 소규모로 맞춤형 차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면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다원을 방문하자. 그중 화개면 정금리에 자리한 ‘유로제다’는 백철호·엄옥주 부부가 1994년 화개에 이주해 2000년에 설립한 다원이다. ‘젖 유(乳)’ 자와 ‘이슬 로(露)’ 자를 쓰는 만큼 깊지만 맑은 차를 제다(製茶)한다.

차를 손수 재배하는 농가 주인과 다담(茶談)을 나누다 보면 주어진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평균 3~4개 종류의 차를 맛보는 동시에 다도를 배울 수 있는 것도 다원에서 누릴 수 있는 특혜다. 차를 마실 때는 찻잔을 왼손으로 받친 뒤 오른손으로 살며시 감싸쥔 채 마신다. 차의 빛깔을 보고 차의 향기를 맡은 뒤 두세 모금에 걸쳐 천천히 음미한다. 다원을 방문할 때는 최소 하루 전 예약하는 것이 필수다.

자신에게 또 타인에게 더없이 다정해질 수 있었던 시간. 차와 함께한 이번 하동 여행은 ‘다정지교(茶情之交)’의 여정이었다. 우릴 때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내는 차를 가운데 두고 나눈 우리의 이야기 역시 매번 조금은 다른 국면의 주제로 그동안 온몸으로 겪어낸 삶을 담아냈다. 어떤 차는 우리면 우릴수록 깊은 맛을 내기도 하지만 어떤 차는 가장 맛이 좋은 시기가 있는데 문득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도 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지어졌으며 의상대사의 제자인 대비(大悲)와 삼법(三法)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도를 닦은 사찰이다. 처음에는 절 이름이 옥천사였으나 신라 후기 정강왕 때부터 쌍계사가 됐다. 현재의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벽암선사가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은 것으로 고즈넉한 경내 운치를 자랑한다. 쌍계사로 이동하는 초입에 ‘차나무 시배지’가 있으니 함께 구경하면 좋다.

하동야생차박물관 외관
하동야생차박물관 외관

또한 ‘하동야생차박물관’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역사와 전통을 기리는 전시 및 교육 공간으로 인근의 ‘하동야생차치유관’, ‘티카페하동’과 함께 하동의 차를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홍보하는 데 널리 기여하고 있는 문화 명소다. 매해 5월이면 이곳 일대를 무대로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리며 다채로운 방식의 티 클래스와 티 토크 등을 진행하기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여행자의 발길이 이어진다.

글·사진: 이시우(여행작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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