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볼까?] 488. 강원 홍천군

홍천강 지류를 따라 달리면 보이는 행복공장
홍천강 지류를 따라 달리면 보이는 행복공장

이따금 이런 상상을 해본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작은 공간에 오롯이 나 혼자다. 스마트폰이나 TV 같은 전자기기는 없다. 시계도 없다. 대신 초록빛 자연을 담은 큰 창 하나에 평소 읽고 싶었던 책 한두 권과 끄적거릴 노트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종일 멍때려도 될 자유가 있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본 상상의 공간이 완벽하게 재현된 현실판 장소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달려갔다.

강원 홍천군으로 접어들어 홍천강 지류를 따라 초록이 한창인 산야를 눈에 머금고 얼마를 달렸을까? 행복공장이라는 작은 간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많고 많은 공장 중 행복을 만드는 공장이라니. 누가 이런 공장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호기심을 잔뜩 품고 방문자센터로 들어선다.

고 권용석씨의 글을 엮은 유고집 '꽃 지기 전에'
고 권용석씨의 글을 엮은 유고집 '꽃 지기 전에'

방문자센터에 놓인 ‘꽃 지기 전에’라는 책 속에 그 해답이 있었다.

“행복공장을 왜 하냐구요?
제가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들 수심이 가득해 보여서
행복하지 않은 내가 너를 물들일 것 같아서
행복하지 않는 너에게 내가 물들 것 같아서
행복으로 물들이는 너와 내가 되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도 행복공장을 합니다.”

행복공장을 설립한 고 권용석씨의 글이다.

검사와 변호사로 활동했던 그는 정신없이 살던 검사 시절 ‘교도소 독방 같은 데서 딱 일주일만 쉬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종종 했고 그게 행복공장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공간에서 그는 연극인인 아내 노지향 원장과 함께 성찰과 나눔을 통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다 안타깝게도 암 투병 끝에 2022년 세상을 등졌다.

1.5평 남짓한 독방
1.5평 남짓한 독방

비록 그는 떠났지만 행복공장은 여전히 설립자의 뜻대로 ‘우리 사회가 좀 더 행복한 곳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행복공장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들이 주로 참여하는 체험은 ‘나를 만나는 하루 독방 24시간’이다. 1.5평(5㎡) 남짓한 독방에 하루 동안 혼자 머물며 자신과 마주하는 성찰 프로그램이다.

오전 10시 30분경 행복공장에 도착하면, 오리엔테이션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프로그램 관련 전반적인 설명과 시설에 대한 안내가 이뤄지는 시간이다. 동시에 참가자들이 참여 동기를 공유하는 시간이다. 맞벌이로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며 바삐 지냈다는 30대 아빠, 오랜 세월 부부 문제로 힘들었다는 50대 여성, 자식들이 다 커서 혼자 있는 시간은 많지만 정작 나를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는 50대 여성 등 많은 사람이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혼자만의 시공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독방 입소 전 다 함께 점심 식사와 산책을 한다. 자연과 손맛이 담긴 정갈한 음식으로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행복공장 앞 강변 시골길을 따라 느긋한 산책을 즐긴다. 산책길에는 이곳 마스코트인 ‘댕댕이’ 해피와 토리가 함께해 더욱 정답다.

푸른빛이 감도는 수련동
푸른빛이 감도는 수련동

이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갈 시간. 푸른 빛 감도는 수련동 건물로 이동한다. 감옥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철문 옆에는 ‘내 안의 감옥’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노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안에 다 저마다의 감옥을 하나씩 짓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내가 어디에 메어 있는지, 나의 감옥은 뭔지, 나의 행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뭔지를 깊이 돌아보면서 알아차리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자기 마음속 감옥의 문을 여는 열쇠는 본인이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본인이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인 거죠.”

흡사 교도소와 같은 수련동 내부
흡사 교도소와 같은 수련동 내부

그의 말을 곱씹으며 건물에 들어선다. 계단 옆으로 작은 방들이 조르륵 어깨를 맞댄 모습이 흡사 교도소 같다. 각자 부여받은 번호에 맞춰 자기 방을 찾아간다. 어른 둘이 누우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방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입구에 커튼으로 분리한 화장실이 있고 작은 세면대와 좌식 탁자, 요가 매트, 다기 세트 등이 있다. 화장실 위에는 이불 넣는 수납장을 배치했다. 공간 활용을 야무지게 한 덕에 혼자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저런 준비를 마치고 오후 1시 반쯤이 되자 ‘댕, 댕, 댕’ 맑고 깊은 싱잉볼 소리가 들린다. 이제 곧 방문을 닫는다는 신호다. 시계도 스마트폰도 없는 공간에서 싱잉볼 소리가 폐문과 개문, 식사 시간 등 주요 일정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철컹!’ 밖에서 문을 잠근다. 곧이어 배식구로 스마트폰을 내놓는다. 이상한 일이다. 좁은 공간에 갇히는 순간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다. 신체적 자유를 빼앗긴 독방에서 비로소 심적 자유를 얻은 느낌이랄까. 갇힌 공간에서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곳에서 계획 따위는 필요 없다. 의식의 흐름대로 따르면 그만이다. 챙겨 온 책을 읽다 누워서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준비된 차를 내려 마시다 탁자 위에 놓인 212호 방명록도 뒤적거려 본다. 10대, 20대, 중장년층 등 이 방을 거쳐 간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과 이야기가 담겼다. 누군가는 고민을 남겼고 누군가는 거기에 답이나 응원을 달았다.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게 된다.

‘댕, 댕. 댕’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싱잉볼 소리가 들리고 도시락이 배식구를 통해 들어온다. 과일과 떡, 선식으로 구성된 간소한 식사다. 절제된 식사로 몸을 가볍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함이다.

몇 시인지도 모를 시간에 잠이 들었고 새벽 6시를 알리는 오르골 소리에 살포시 잠에서 깨어났다. 자장가인 듯, 알람인 듯한 부드러운 오르골 소리를 들으며 수면과 기상 사이를 오가고 있을 무렵 절 명상이 시작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하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로 시작한 절 명상은 ‘이 모든 것을 품고 하나의 우주인 귀하고 귀한 생명인 나를 위해 백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로 끝난다. 절은 스무 번쯤에서 중도 포기했으나 각 절에 담긴 백여덟 가지 의미만은 끝까지 새겨듣는다.

아침 도시락을 먹고 마지막 독방의 자유를 누려본다. 철컹! 다시 일상과 연결되는 문이 열린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을 조건으로 가석방을 명한다’는 내용의 가석방 증명서를 품에 안고 일상 속으로 복귀한다.

글·사진: 김수진(여행작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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