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종호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 부회장
정부와 서울시가 잇달아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방향은 다르다. 정부는 공공택지와 국유지를 활용한 공공주도형 공급에 방점을 찍고 서울시는 정비사업 중심의 민간주도 신통기획 시즌2를 통해 31만 가구 공급을 내세웠다. 그러나 시민의 체감은 여전히 미약하다. 공공은 속도가 느리고 민간은 규제와 갈등에 막혀 있다. 공급은 많다는데 집값은 안정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책의 차이는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투기 억제와 시장안정을 위해 공공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서울시는 도심 수요에 맞춘 민간 중심의 속도전을 강조한다. 한쪽은 ‘안정’을, 다른 한쪽은 ‘현실성’을 내세우며 협력보다는 마치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결국 시장에는 상반된 신호만 남고 시민들은 정책의 방향을 신뢰하지 못한다.
이제는 대립이 아니라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그 해법이 바로 ‘리모델링’이다. 리모델링은 기존 건축물을 유지한 채 주거 성능을 높이는 방식으로 재건축보다 비용과 기간이 짧고 환경 훼손도 적다. 공공은 제도적 기반과 행정 지원을 담당하고 민간은 설계·시공·관리 등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다. 즉 리모델링은 공공의 ‘안정성’과 민간의 ‘속도’를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현실적 공급 해법이자 양측이 만날 수 있는 정책의 교집합이다.
지난 2월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KRC)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서 현재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수립한 15개 지방자치단체 내 가구 수 증가형 리모델링 수요는 2258단지 161만7943가구에 이른다. 이 점을 정책적으로 활용한다면 정부의 고민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다.
지금까지 수도권 재건축에만 올인하며 리모델링을 규제해 온 전임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 실효성을 이제는 한번쯤 되돌아봐야 한다. 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수정돼야 하며 “민간에 맡긴다”는 구호가 무색하게 리모델링을 억제해 온 행정 관행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 자기 성찰 없는 정책 개선은 공급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없다.
제도적 정비도 시급한 과제다. 현행 리모델링 제도는 내력벽 해체 제한, 층수 증가 규제 등으로 사업 추진이 너무나 어렵다. 정부는 구조안전성 기준 완화와 인센티브 부여를, 서울시는 인허가 간소화와 주민 지원 절차를 맡는 이원적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 두 축이 맞물릴 때 리모델링은 단순한 보수공사가 아니라 도시 속 새로운 주택공급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속도 경쟁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공공이 틀을 세우고 민간이 채워 나갈 때 리모델링은 엇박자 난 공급정책의 공통분모가 되고 주택시장 안정과 도시 재생이라는 두 과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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