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일 새벽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주차된 벤츠 전기차에서 시작된 화재가 크게 번지며 900여 대의 차량이 피해를 입었고, 전기·수도 배관 등 손상으로 수백 세대가 단수와 정전으로 큰 불편을 겪었다. 지하주차장은 1년 가까이 폐쇄됐고, 입주민들은 극심한 주차난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 1년 만에 주차장이 개방됐으나 입주민의 불안은 여전하다.

화재를 키운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경보기가 울리자 직원이 스프링클러를 끄고 현장점검에 나선 점이다. 빈번한 오작동으로 이를 끄고 대처한 것이 큰 화재로 이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리튬이온 배터리의 ‘열폭주’ 특성까지 겹치며 화염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경보기와 스프링클러의 잦은 오작동으로 입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원칙을 지키지 못한 잘못된 대응이 반복되고 이는 결국 참사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우리나라 아파트는 지상 공간을 공원화하는 설계가 보편화되면서 주차공간이 지하에 집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기·수도·기계실 등 주요 설비가 밀집한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단순한 차량 손실을 넘어 단수와 정전 등 단지 전체 기능 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것이다. 정부의 정책 역시 문제다. ‘친환경자동차법’에 따라 모든 아파트는 일정 비율의 전기차 전용 주차면과 충전시설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정작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안전 기준은 미흡하다. 결국 현장은 설치 의무만 떠안고 안전대책은 각 단지가 알아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전기차 화재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19년 7건에서 2023년 73건으로 5년 새 10배 이상 증가했고 최근 3년간 누적 발생 건수만 139건에 달한다. 인명피해와 재산 손실 역시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는 뒤늦게 질식포, 이동식 소화수조 등 장비를 보급하고 지상 충전기 이전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자부담과 공간 제약 탓에 충전기 이전 확산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규모 아파트의 공간 제약과 입주민 간 이해관계로 인해 이러한 해법으로는 실행되기 어렵다. 당장에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소방시설 작동관리를 강화하고 현장의 대응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우선 지하주차장의 스프링클러와 경보기가 오작동으로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정기 점검을 강화하고, 화재경보기 오작동 관련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근본적인 오작동 저감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관리사무소 직원과 입주민 대상의 전기차 화재 대응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열폭주 특성을 이해하고 초기 대응 방안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지하주차장에 대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전기차를 포함한 화재나 침수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방화구획이나 제연설비 등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청라 화재는 단순히 한 아파트의 사고로 기록돼서는 안 된다. 전국의 아파트가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직시하고 기술적·제도적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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