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주택관리사
김태완 주택관리사

우리 아버지 또래의 전임 선거관리위원장 어르신이 관리사무소를 찾아왔다. 한참 업체와 하자보수와 관련해 통화 중이라 길어질 거 같아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상황을 물으니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가셨다.

그러고 30분이 지난 후 다시 전임 선거관리위원의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세요, 아까 못하신 말씀이 있으신거죠?”라고 물으니 순순히 말을 꺼냈다.

실은 주말에 경로당 행사에 쓸 식자재를 구매하려고 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농산물 가게에 가서 물건을 보면서 “요새 할인하는 좋은 물건이 없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가게 점원이 큰소리로 “여기 아파트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할인하는 것만 밝히나”라는 얘길 했다고 한다. 점원이 큰소리로 말해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그 직원에게 항의하고 약간의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고도 화가 삭히지 않아 소장인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선서관리위원장 어르신은 소장인 내게 가게를 찾아가 주의를 단단히 주라신다. ‘평상시 농산물 가게가 그 범위를 넘어 좌판을 펴는 민원이 많이 들어와도 나무라지 말라던 분이 오늘은 엄청 속이 상하셨나보다’고 생각했다.

일단 농산물 가게에 가보니 사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좀전의 소란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사장에게 좀전의 상황에 대해 물으며 “그 어르신이 사려고 했던 게 무엇이며 그 물건은 사셨나요?”라고 물으니 하나 남은 피꼬막을 가리키며 저걸 “사려다 기분이 나빠 그냥 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피꼬막을 결제하고 경로당에 배달해 주면서 어르신에게 사과를 부탁했더니 사장 역시 굳이 돈을 안 받겠다며 자기가 그렇지 않아도 사과하러 가려 했다고 한다.

그 어르신이 공짜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재차 돈을 쥐어주고 사과를 부탁했다.

그러고 잠시 후 그 어르신이 다시 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

“도대체 얼마나 혼을 냈기에 사장이 잔뜩 상기돼 피꼬막과 딸기를 가득 들고 왔냐”며 걱정을 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굳이 또 피꼬막 값을 주려고 했다.

“마음은 풀리셨어요”라고 물으니 웃으며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그래서 내일은 휴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는다며 직원들의 점심을 부탁하니 꼭 챙기겠다며 웃으며 돌아섰다. 먼 고향에서 아들이 잘되기만 바랬던 순박한 우리 아버지와 얼굴이 겹쳐진다. 어르신의 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떠나는 그 길에 관리사무소에 대해 좋은 인상이 남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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