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익 소장의 조경더하기 44

수확의 계절은 더불어 상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결실의 계절이 지나면 스산한 바람과 함께 한 해 동안 꽃피고 열매 맺었던 나무는 홀연히 이파리를 떠나보내는데, 씨앗이라는 후대를 잘 키워 남겨뒀으니 미련 따윈 없어 보인다.

요즘 우리가 관리하는 아파트 단지에는 울긋불긋 짧은 하루를 뒤로한 채, 늦가을 황금빛으로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은행나무가 있어 그나마 쓸쓸함이 덜하다. 가을이 가는 소리가 단풍이라는 빛깔에 투영돼 마음에 머물기 때문이리라.

은행나무(Ginkgo biloba, 銀杏木, 公孫樹)는 암수딴그루로 키가 60여m까지 자라는 갈잎나무다. 문제는 넓은잎나무가 아닌 바늘잎나무로 분류된 것인데 잎 모양이 바늘 모양과는 전혀 다른 널따란 모양을 하고 있어 한 번쯤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잎맥
잎맥

분류학상 1문-1강-1목-1과-1속-1종이기에 따로 ‘은행수’라 이름 붙일 수 있었지만, 편의상 바늘잎나무에 포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은행잎 화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 전체가 선명한 바늘 모양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그렇게 분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낙엽
낙엽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은행잎은 때로는 책갈피로, 때론 도회지 사람들의 정서적 허기를 달래주는 푸근한 이웃으로 지금껏 잇대어 왔다. 게다가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거나 향교·절에서의 정신적 지주 같은 삶도 마다하지 않고 천년을 지켜오고 있다. 2억50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은행나무 시조(始祖)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릴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나무로, 중국 리지아완의 것은 무려 4500살이나 먹었다고 하니 가히 놀랄만하다.

열매
열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식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정충의 움직임인데 마치 동물의 그것처럼 난자를 찾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과연 식물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두꺼운 나무껍질은 불에 매우 강해 불을 끄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으며, 열매를 싸고 있는 과육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와 독성은 거들떠보는 동물조차 없는 관계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할 정도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퍼뜨리지 않는 한 앞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얘기다.

수꽃
수꽃
암꽃
암꽃

우리나라에는 25그루나 되는 은행나무 노거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어 해마다 이맘때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찾는 이들로 북적인다. 성균관의 것은 줄기에 유주(乳柱)라는 젖꼭지 닮은 혹이 붙어 있고, 인천의 장수동 것은 전체적인 나무 형태가 은행잎을 빼닮아 신비롭다. 이렇듯 전국에는 그 고장을 대표할만한 은행나무들이 전설을 머금은 채 보호수로 지정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데 보는 이들에게 벅찬 감동과 함께 치유 내지는 위로를 건넨다. 특히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의 은행나무가 그러한데, 7부 능선쯤 자리 잡은 수령 500년 된 할배나무 아래서 굽어보는 두물머리의 풍경이 자못 빼어나다. 삼정헌(三鼎軒)에 들러 조용히 차 공양하는 것은 덤이랄까.

※ 관리 포인트
- 대기오염, 병충해, 강풍에 강한 편으로 가로수나 공원에 조경수로 많이 심는다.
- 산림과학원에 의해 암수 감별이 가능해졌으므로 농가에서는 은행채집이 가능한 암나무를, 아파트 단지나 가로수에는 악취 민원이 없도록 수나무를 심는다.
- 열매의 바깥 껍질에서는 악취가 나고 피부에 닿으면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니 수나무로 교체하는 것이 좋다.
- 크게 자라는 나무이므로 건물에 가까이 붙이지 말고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 심어야 한다.
- 번식은 가을에 씨앗을 노천 매장했다가 봄에 심거나, 충실한 전년지로 꺾꽂이하는 방법 또는 접목법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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