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주택관리사
김태완 주택관리사

내가 처음으로 관리사무소장 근무를 했던 단지는 준공 후 20여년이 흘렀고, 400여 세대가 되는데 기본 평수가 10평도 채 되지 않는 아파트였다.

맞교대 경비원 각 1인과 경리주임, 영선 및 기계기사 일근직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근무를 했었는데, 불가피하게 경비원 한 사람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됐다. 부랴부랴 신임 경비원을 뽑았는데, 함께 근무하는 경비원으로부터 신임 경비원이 근무 중에 술을 마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면접 볼 때 근무 중 음주를 하면 바로 해고한다고 했음에도, 거의 매일 과하게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교대 근무자가 아침에 교대할 때 술 냄새가 심하게 느낄 정도로 말이다.

처음 한두 번은 자제를 요청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술을 안 마셨고 술을 마시면 그만두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세 번째 음주 보고를 받았을 때도 그렇게 장담해서 기한을 정하지 않은 사직서를 받아뒀다. 향후에 음주가 적발되면 사직서에 날짜를 적어 바로 쓰겠다고.

보름이 지났는데 도무지 시정되지 않아 결국 그만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그 경비원은 노발대발하며 관리사무소를 폭파하겠다고 가스통을 들고 온다고 했다.

한두 시간 정도 지나 11시쯤 되니 그때가 한겨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반팔 런닝에 체육복 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관리사무소에 찾아왔다. 노인(?)이라도 거구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이였는데, 그런 차림과 취해서 온 걸 보고 사무실에 있던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경직됐다. 입주민도 몇 명 있었는데,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모두 놀랐다.

그 경비원이 흥분해서 소란을 피웠다. 자기랑 교대 근무하는 사람이 나한테 모든 걸 고자질해서 자기가 잘리게 됐다고 호소했다. 그분의 얘기를 듣고만 있다가 점심시간도 되고 했으니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나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자기가 가장으로 자녀 둘을 4년제 대학을 졸업시켰고 남에게 피해 안되게 열심히 살아온 얘기를 해줬다.

나는 “아저씨는 연배로 치면 저의 작은 아버지뻘 되고, 그동안 자녀들도 4년제 대학을 보내실 만큼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많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저는 아저씨를 좋아하지만 제 그 마음으로 우리 직원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고, 야간에 관리사무소 직원이 경비원 한 명인데, 음주를 하다 입주민들에게 밉보이면 전체 직원이 해고당할지 모르니 내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취지로 얘기를 했다.

식사 말미에 다행이 그동안 음주한 걸 인정하고, 또 나의 입장도 이해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반주겸 점심식사를 오후 4시까지 하고, 택시를 불러 댁까지 보내드렸다.

그 후에도 교대 근로자에게 몇 번인가 막말을 하며 가만 안 둔다고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다 내가 시킨 일이며 미안하고, 사과한다”고 전화를 한 후 이 일은 마무리됐다.

내가 해고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진 않았다.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아 한편으론 흐뭇하기도 하다. 의사소통을 할 때 사람의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지게 돼 있다. 내가 아무리 이쁜 말로 포장을 해도 내가 상대를 미워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상대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상대를 미워하면 안된다. 특히 껄끄러운 사람일수록 더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항상 그렇게 될 순 없지만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가 하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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