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안전 점검 교육을 받았다. 관련 법령상 관리사무소장이 안전 점검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수료하면 전문가 수준의 정밀안전진단은 할 수 없지만 육안으로 하는 정기 점검을 할 수 있게 된다. 전국에서 모인 60명의 주택관리사(보)들은 일주일간 합숙을 했다. 소속된 지역을 넘는 전국적인 인맥을 쌓을 기회도 됐다.
예전 직장에 다닐 때 비록 행정 분야였지만 전국 단위의 안전 점검을 총괄하는 부서에서 점검체계를 다룬 경험이 있어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안전 점검에 대한 가치관을 정리해 봤다.
입주민 공동체의 삶의 터전인 아파트를 안락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점검 기술에만 의존하는 기계적 점검으로는 부족하다. 안전 점검은 전기나 수도 요금을 부과하기 위한 원격 검침과는 다르다. 매뉴얼만 따르는 점검은 중요한 사실을 놓칠 수도 있다. 건강검진과 비슷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진찰처럼 내가 살고 있는 집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관리주체인 관리소장의 점검은 기술직원이 직접 실시하는 점검과는 결이 달라야 한다. 직업 윤리상 임의로 대충하는 영혼 없는 점검은 안 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하자를 발견할 뿐 아니라 사고 예방을 위해 장차 일어날 수 있는 상황도 예측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입주민이 쾌적하고 자부심 있게 살도록 명품 아파트의 가치를 지킨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예술품을 감정하듯이 추상적인 단어를 나열하는 점검 결과가 나와서도 안 된다.
현실적으로 관리소장의 육안 점검은 정밀하고 복잡한 기계가 필요한 전문적인 점검을 할 수 없다. 전반적인 관리책임자가 사소한 부분에 천착하는 모든 점검을 직접 할 수도 없다. 다만 방향은 확실히 정해줘야 한다. 기술적 점검을 담당하는 기사에게 분명하고 구체적인 책임을 부여해 제대로 된 점검을 할 수 있도록 지휘해야 한다.
관리소장은 아파트 안전의 최종 책임자다. 배의 운명을 책임지는 선장과 같다. 아파트에 품격이 있다면 이 품격을 지키는 차원에서 혼을 실은 안전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요즘 아파트는 기술이 좋아져 100년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20년 전에 모 자동차 광고에서 ‘10년을 생각하면 기술이지만 100년을 생각하면 철학입니다’라는 카피를 본 기억이 있다.
어차피 아파트가 100년 안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100년을 생각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철학에 어울릴 만한 사람은 입주자대표회장, 동대표 그리고 관리소장 뿐이다. 향후 입대의 회장이나 동대표가 같이 점검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겠지만 현재의 법령상 이들은 점검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교육을 받은 관리소장에게만 점검의 자격이 있다.
교육은 무기라고 한다. 배우면서 얻은 지식은 남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지식을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은 오히려 남에게 가르쳐 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강의를 맡은 강사들은 훌륭한 강의를 했다. 그러면서 그들도 많이 배운다고 했다. 역시 같은 논리로 시설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하자 검사를 해보는 것이다. 검사를 하면서 시설에 대한 문제점이나 기능을 잘 이해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교육은 필자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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