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화온 오정환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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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에서는 입주자대표회장이 교체될 때마다 인수인계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이 발생한다. 특히 도장, 사업자등록증 등 명의 변경과 직결되는 물품을 전임 회장이 넘겨주지 않는 경우 후임 회장 입장에서는 “업무를 방해받고 있다”는 감정적 갈등이 커지기 쉽다. 이러한 사안이 형사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 최근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인수인계의 충돌이 곧바로 ‘업무방해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대법원 2025. 9. 4. 선고 2024도7386 판결 참조).

사건은 한 아파트에서 전임 회장이 후임 회장에게 은행거래용 인감도장과 사업자등록증 원본을 인도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1심과 항소심은 이를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한 위력 행사”로 봐 유죄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단순한 인도 거부만으로는 형법상 ‘위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그 행위가 피해자의 의사결정을 제압할 정도에 이르러야만 업무방해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무엇보다 이번 판례는 “입대의 회장의 업무가 실제로 마비됐는가”라는 현실적 판단을 기준으로 삼았다. 후임 회장은 인감도장 없이도 회의 개최, 결의 집행, 사업자등록 변경, 예금 청구 등 주요 업무를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전임 회장이 그 인감을 이용해 회장행세를 하거나 외부와의 거래를 방해한 정황도 없었다. 즉 행위가 다소 비협조적일 수는 있으나 이를 형법으로 처벌할 만큼의 ‘공격적 방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이 판결은 입대의의 조직적 특수성을 고려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이 형사처벌로 비화될 경우 단순 개인 간 다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위화감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법원은 ‘형사처벌의 범위는 신중하고 좁게 보아야 한다’는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임 회장의 행위가 아무 문제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인도 지연으로 업무 혼선을 초래했다면 그 책임을 민사적·행정적 절차를 통해 문제 삼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보면 회장직 인수인계가 전임 회장의 자발적 협조에만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임자와의 갈등이 깊을수록 새 회장이 초기에 직면하는 법적·행정적 난점은 커진다. 이럴수록 더욱 절실한 것이 제도적 장치다. 인수인계 과정에 대한 명확한 관리규약, 명문화된 절차, 제3자의 입회 등을 의무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예방책은 단지 절차적 편의의 문제를 넘어서 불필요한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가진다.

또한 아파트 관리의 공공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도 고려해볼 만하다. 단지 회장의 개인적 책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주체의 행정력 안에서 인수인계 체계를 마련하고 입주자 전체에게 그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입대의의 갈등이 단순한 인간관계 문제가 아니라 공동주택 전체의 법적 안정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입대의는 단순한 ‘관리조직’이 아니라 공동주택 생활의 질을 유지하는 핵심 자치기구다. 그 운영의 출발점은 갈등이 아니라 신뢰여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형사처벌’이라는 칼끝을 무리하게 적용하기보다 공동체 내부의 해결력과 책임성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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