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던 아래층 입주민이 위층 세대 일가족에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관련기사 제1554호>
연이어 발생하는 층간소음 관련사건은 단순한 이웃 간의 다툼을 넘어 공동주택 사회 전반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공동체의 붕괴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공동주택은 이미 전체 주거의 70%를 넘음에도 층간소음 대응은 여전히 민원 처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관리사무소는 안내 방송 및 안내문 게시라는 형식적 절차에 갇혀 있고, 입주자대표회의는 개인 간 분쟁으로 치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입주민은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개인적 대응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번 사건 역시 이러한 제도적 공백 속에서 예견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층간소음 갈등의 본질은 ‘소통 부재’와 ‘중재 시스템의 실질적 부재’에 있다. 정부는 층간소음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700세대 이상 아파트에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며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낮다. 구성도 어렵고 구성되더라도 전문성과 권한이 부족해 실질적 조정기능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와 공동체의 균형 잡힌 결합이다. 우선 층간관위는 자율적 참여를 전제로 한 제도이지만 실상은 관리사무소의 행정 부담으로 귀결되고 있다. 위원 모집, 회의 지원, 회의록 작성까지 대부분이 관리사무소의 몫이며 결국 분쟁 조정자로까지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제도 개선의 핵심은 역할의 명확화다. 층간소음 예방과 1차 민원 접수는 관리사무소의 몫이지만 갈등의 중재·조정은 입주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입주민이 직접 참여해 갈등을 조정할 때만 책임감과 신뢰가 형성된다. 아울러 지자체는 이러한 자율적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층관위 위원 교육과 활동비 지원을 제도화해야 하며 위원회 운영 실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관리소장과 입대의를 대상으로 한 ‘층간소음 대응 교육’과 ‘갈등관리 매뉴얼’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건축기술 차원의 대책 또한 병행돼야 한다. 층간소음의 상당 부분은 설계와 시공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바닥 충격음 차단 성능 강화 등 현실적인 제도에 대한 보다 섬세한 검토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문화의 회복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갈등의 본질은 결국 이웃 간 단절에서 비롯된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관리사무소와 입대의는 정기 간담회 등을 통해 이웃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례로 일부 아파트에서는 입주민을 대상으로 층간소음을 주제로 한 그림그리기 대회와 전시회를 열어 이웃 간 공감과 소통을 통해 갈등을 예방하고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층간소음은 단지 내부의 문제를 넘어 공동주택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의 신설이 아니라 도입된 제도를 현장에 맞게 작동시키는 일이다. 정부는 법적 틀을 보완하고 지자체는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며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은 각각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공동체가 살아 있어야 제도가 작동하고 제도가 작동할 때 공동체는 더욱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