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생활연구소 김정인 연구위원(부소장)
주생활연구소 김정인 연구위원(부소장)

공동주택의 관리가 중요하고 까다로운 이유는 공동주택에는 전유부분과 공용부분이 구분돼 있고 각기 소유형태와 관리책임이 다르며 주택의 물리적 안전성을 확보하고 쾌적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공용부분에 대해 다수의 입주자가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물리적 안전성을 위한 관리 활동으로 일상적인 유지관리와 계획적인 유지관리를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계획적인 유지관리는 보다 장기적인 맥락에서 물리적인 안전을 확보하고 나아가서는 발전된 기술력을 도입해 입주자의 생활 편의성과 건물 이용 시 배출되는 에너지의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계획적인 유지관리를 위해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공동주택관리법에서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장기수선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하고 있고 이 규정은 지자체에서 지도·감독을 통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장기수선충당금은 미래의 주요한 대규모 수선 공사에 충당하기 위한 비용이므로 적립된 규모가 커서 이에 대한 투명한 집행을 위해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장기수선계획의 조정을 3년마다 하지 않는다거나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반드시 공사를 이행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가차 없이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의 적용 방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계획수선 제도가 유독 장기수선계획의 수립, 조정절차, 충당금의 투명한 사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정작 중요하게 다뤄야 할 계획의 활용, 계획적인 수선을 위해 필요한 충당금은 등한시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점검해 봐야 한다. 관련 연구에서 장기수선계획의 미수립, 계획 미이행의 경우 지자체의 과태료 부과 항목 중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반면 장기수선충당금의 적립과 관련해서는 주의, 통보 위주로 지도·감독이 이뤄지고 있었다. 과태료를 면하기 위해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공사를 ‘계획대로’ 집행하거나 필요한 공사를 시행하기 위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장기수선계획을 조정하고 장기수선충당금 사용에 대한 ‘불필요한 눈치’를 봐야 한다. 공동주택의 계획적인 관리가 왜 필요한가? 현실은 본질에서 다소 벗어나는 듯하다.

미국, 캐나다 등의 콘도미니엄 법 제도에서는 소유자조합이 건물의 자산관리를 위한 예비기금 마련을 위해 장기수선계획에 해당하는 ‘예비연구(Reserve Study)’를 수행하도록 한다. 다만 예비 연구는 예비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리, 교체, 복원이 필요한 건물의 주요 구성요소에 대한 점검, 필요충당금 및 조달방법이 포함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장기수선계획과 수선적립금에 대한 제도적 의무는 없지만 중앙정부에서 장기수선계획, 수선적립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각각 제공하고 있으며 적립방식도 상황에 따라 균등적립방식, 단계적 증액적립방식 두 가지를 제시해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장기수선계획은 계획에 불과할 뿐 계획된 공사를 실제로 진행할 때는 반드시 건물의 상태를 진단하고 점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건물의 계획관리는 사람의 건강관리와 흡사하다. 청소년기의 노후 준비와 중장년기의 노후 준비는 엄연히 다르고 동일한 연령기라도 각자의 건강관리 정도, 건강 상태에 따라 노후의 건강 플랜은 달라져야 한다. 노년기에 많이 발병하는 질환의 치료를 대비해 자금을 모아둔다 한들 질환이 없는데 치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료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을 통해 치료 시기와 방법을 판단해야 한다. 공동주택 관리가 전문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공동주택의 ‘개별성’이다. 단지 규모, 노후도, 건축구조, 공용공간, 설비, 도입된 기술력, 난방방식 등 물리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을 비롯해 다양한 생활양식의 입주자와 서비스 니즈의 다양성은 공동주택 관리가 획일적인 잣대로 관리되고 평가되지 말아야 하는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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