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아파트에 살다 보면 층간소음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내 집 바닥이 아랫집의 천장인 공동주택의 구조상 층간소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기도 하다. 특히 주거는 가장 쾌적해야 할 내밀한 공간이다보니 층간소음에서 비롯된 갈등은 여러 국면으로 확장되고 변주된다.

B씨가 아파트 G호에 이사 온 후부터 늦은 밤이나 새벽에 벽을 두드리는 심한 소음이 나기 시작했다. 관리사무소는 평균 3~4일 간격으로 소음 유발 금지 안내방송을 내보내기도 했으나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이 층간소음에 대한 대책이 논의될 정도에 이르렀는데, 알고 보니 G호와 F호 사이에 층간소음 갈등이 있었고, 이에 따른 G호의 보복 소음 유발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관리사무소는 해당 동의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소음 유발 세대를 특정하지 않은 채 ‘층간소음을 발생시키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캠페인성 안내문만 게시했다.

이 안내문이 부착되자 이웃 입주민들은 안내문 주위에 “쿵쿵대며 벽과 바닥을 때리는 소음을 중지해 달라”는 취지의 메모지들을 수십 장 붙였다. 그러나 소음은 중단되지 않았다.

G호 이웃에 살고 있는 A씨는 늦은 밤 아이가 막 잠이 들었는데 또다시 벽을 쿵쿵 울리는 망치질 소리 같은 것이 들리자 캠페인 식의 항의는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G호 거주자의 행동이 이웃 거주자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명확하게 깨닫게 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입주민들의 피해를 방지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G호를 명시한 메모지를 엘리베이터에 붙이게 됐다. 해당 메모지에는 “벽에다 쿵쿵대는 소음 그만 좀 내세요! 7층부터 11층까지 1~3호 라인에 피해 세대가 많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STOP!”이라고 써 있었다.

A씨는 이 일로 공공연하게 사실을 적시해 G호에 거주하는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위와 같이 메모를 부착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적시한 것이고, 적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A씨가 이를 진실로 믿었고,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 것이다.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를 훼손하면 범죄가 된다. 단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비록 적시한 내용이 진실한 사실인지 증명되지 않더라도 행위자가 진실이라고 믿었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무죄로 봐야 한다.

소음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번지거나 또 다른 범죄로 격화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소음은 상대방에게 끼치는 피해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격상한다.

공동주택은 여럿이 함께 사는 공간이니만큼 내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 조금은 평화롭고 평온한 주거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메모 한 장 붙였다가 명예훼손으로 수사받고 재판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소음 피해만큼이나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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