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A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가 근무하는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로 각종 설비가 노후화된 상태다. 특히 화재 경보 오작동이 빈번하게 일어나 입주민들의 민원이 잦았다. A는 그 대책으로 매뉴얼을 수립했는데, 그 내용은 ‘화재 경보가 울리면 R형 수신기의 지구경종(음향), 사이렌, 비상방송 작동 정지 버튼을 순차적으로 누른다. 그런 다음 현장 확인을 해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작동 정지를 모두 해제하고 119에 신고한다’다. 경보가 잘못 작동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자 경보를 일단정지하고 실제로 화재가 났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A는 이 같은 매뉴얼을 수립해 통합초소 근무자들에게도 숙지해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어느 날 위 아파트 한 호실에서 불이 났다는 화재 경보가 울렸다. 통합초소 근무자였던 경비원 B는 화재 경보가 울리자 위 매뉴얼대로 해당 호실의 지구경종(음향), 사이렌, 비상방송 순으로 정지 버튼을 눌러 위 소방시설의 작동을 차단했다. B는 지체없이 해당 호실의 복도를 방문해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것을 확인하자 옥내 소화전을 이용해 소화 활동을 했고 119 신고로 출동한 소방관에 의해 화재는 조기에 진압됐다.

B에게 이 같은 업무 지시를 한 A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화재가 조기에 진압된 것은 다행이지만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구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9조는 ‘특정소방대상물에 설치하는 소방시설의 유지·관리 등’이라는 제하로 제3항에서 ‘특정소방대상물의 관계인은 제1항에 따라 소방시설을 유지·관리할 때 소방시설의 기능과 성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폐쇄(잠금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차단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A는 특정소방대상물인 본건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장으로서 관계인에 해당하고 화재 경보시 R형 수신기의 지구경종(음향), 사이렌, 비상방송 작동 정지, 현장 확인 후 실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작동정지를 모두 해제 및 119 신고 등으로 대응 매뉴얼을 작성하고 이에 따르도록 지시했다. 이는 소방시설의 기능과 성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차단 행위에 해당한다. 동법 제48조 제1항에 따르면 동법 제9조 제3항 본문을 위반해 소방시설에 폐쇄차단 등의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실제 차단 행위는 특정소방대상물의 관계인으로 볼 수 없는 B가 저질렀으나 형법 제34조 제1항에 따르면 처벌되지 않는 자 등을 교사 또는 방조해 범죄행위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자는 교사 또는 방조의 예에 의해 처벌되므로 A는 동법 위반죄에 해당한다.

결국 A는 벌금 500만원에 처해졌다. 비록 노후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거의 매일 화재 경보 오작동이 발생해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실제 화재 시 경비원 등이 제때 대처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수립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안전사고로 이어질 공산이 크므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파렴치한 것만이 범죄는 아니다. 법령에서 부과한 의무를 어길 경우 엄히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면 이를 만연히 어긴 것 역시 엄연한 범죄다. 공동주택을 비롯한 집합건물은 화재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큰 만큼 엄격한 관리와 규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관리주체로서 적법한 대처 방안을 떠올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관련 법령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곤란하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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