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변호사가 낯선 사람의 전화를 받는 일은 흔하다. 누구의 소개를 받았다거나 기사를 봤다거나 여러 다양한 경로로 찾아온다. 최근 이런 연락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두 사연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급명령이 얽힌 사건이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A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을 역임했는데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재임 기간 중 아파트 운영경비를 관리사무소 직원들 식대나 명절 선물 등으로 사용한 게 문제가 됐다. 이 비용은 관리규약에서 정한 아파트 운영경비의 지출항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횡령의 의사가 없었음에도 유죄가 선고됐다. 단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고 개인적 지출이 아닌 아파트를 위해 사용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선고유예 판결이 선고됐다. 하지만 현 입대의가 A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B는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며칠 늦게 반환한 것이 발단이 돼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 및 지연손해금을 달라는 청구를 당했다. 새로운 임차인을 곧바로 구하지 못한 B는 임대차 계약 기간 만료 이틀 후 보증금 중 4분의 3을 반환했고 그로부터 5일째 되는 날 나머지 보증금을 반환했다. 그런데 임차인은 보증금을 받지 못한 것처럼 지급명령을 신청했고 보증금을 전부 반환받고도 전입신고를 이전해 가지 않아 B는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A와 B가 법원으로부터 받은 것은 모두 지급명령이었다. 지급명령은 채무자를 심문하는 절차 없이 채권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담는다. 일반 소송에 비해 인지대, 송달료 등 소송비용이 저렴하고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급명령을 받은 채무자는 이의신청함으로써 다툴 수 있다. 만일 지급명령을 송달받은 때로부터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기니 다툴 부분이 있다면 조속히 이의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사건이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는 지급명령을 신청한 때에 채권자가 소를 제기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채무자의 이의신청으로 독촉절차는 마무리되고 소송으로 이행되기 때문에 채권자는 인지대와 송달료를 일반 소송의 수준으로 보정해야 한다. 채무자에 대한 심문조차 없던 독촉절차와 달리 변론이 진행되는 진짜 소송이 시작된다. 결국 A와 B에게 필요한 진짜 조언은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고 이어질 소송에서 과연 승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일 것이다. A와 B 모두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다. A의 경우 용도가 제한된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경우 횡령죄의 범죄일람표에는 횡령 일자와 횡령금액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그러나 범죄 일람표상의 횡령금액이 곧바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금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은 고의 또는 과실이라는 귀책 사유, 손해의 발생, 위법성, 인과관계가 있어야 성립한다. 정해진 용도대로 사용하지 않은 그 금액들이 모두 아파트에 손해가 된 것인지는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B의 경우 보증금을 반환한 상태고 며칠 지연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채권자가 주장하는 만큼의 지연손해금을 인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보증금을 반환받고도 전입신고를 그대로 둬 B가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한 부분은 반소 제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상대방이 괘씸한 면이 있어도, 다투면 이길 수 있어도 변호사로서 끝까지 싸우라고 강권하기는 어렵다. 명예를 원하는 A는 소송도 불사했지만 B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타협을 원했다. B의 경우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조속히 체결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을 외면하기 어렵다. 억울하더라도 합의하고 임차인의 전입신고를 정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나은 결과일 수 있다. 승소를 확신하더라도 의뢰인에게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 선택을 하도록 도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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