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집합건물진흥원 김영두 이사장(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파트를 관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재산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입주자들은 관리비예치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예금채권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이는 입주자들의 공동재산에 해당한다. 그리고 입주자들은 장기수선충당금도 납부해야 한다. 물론 장기수선충당금은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집행되겠지만 집행되기 전까지는 입주자들의 공동재산에 해당한다. 동산을 소유하는 경우도 있고 잡수입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형성된 재산의 주인은 누구일까?

관리비, 관리비예치금, 장기수선충당금은 입주자들이 납부한 금전이 모여서 형성된 재산이고, 잡수입도 아파트의 공유재산에서 발생한 수입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산은 입주자들의 공동재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아파트에서 형성된 재산은 입주자들의 공동재산이 아니고 동대표들의 공동재산에 해당한다. 즉 이 재산의 주인은 동대표들이다. 아파트에서 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주체는 입주자대표회의이며, 입주자대표회의만이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형성된 재산은 입주자대표회의에 귀속된다. 따라서 관리비도, 장기수선충당금도, 관리비예치금도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하는 동대표들의 공동재산에 해당한다. 법적으로 어려운 설명이 필요하지만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입주자대표회의의 재산은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하는 동대표들이 공동(준)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고, 이러한 소유형태를 (준)총유라고 부른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공동선조를 모시기 위한 종중(宗中)도 단체로서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데, 이러한 소유형태를 종중원들의 공동소유(총유)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아파트의 관리를 위해서 형성된 재산이 동대표들의 공동재산이라고 해서 동대표들이 이 재산을 임의로 사용할 수는 없다. 동대표들의 권한은 입주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권한을 남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아파트에서 형성된 재산의 주인은 동대표들이다. 아파트에서 은행통장을 개설하는 때에도 입주자대표회의 명의로 개설해야 한다. 공사계약을 체결할 때에도 입주자대표회의 명의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공용부분을 임대해 임대수익을 받는 경우에도 입주자대표회의 명의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즉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와 관련된 채권과 채무의 주체가 된다. 소송을 제기할 때에도 입주자대표회의의 명의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결과가 얼마나 이상한지는 공동주택 이외의 집합건물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집합건물의 관리를 위해서 모든 구분소유자를 구성원으로 하는 관리단이 성립하게 된다. 이 관리단은 관리에 관한 법적 주체가 된다. 관리비나 수선적립금이라는 재산이 형성되면 이 재산은 관리단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관리비나 수선적립금은 모든 구분소유자들의 공동재산(총유재산)이 된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은 그 사람들의 공동재산이 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당연한 결론이다. 종중재산은 종중원들의 공동재산이며, 종중임원들의 공동재산이 아니라는 결론이 당연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아파트의 경우에만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 입주자들의 공동재산이 아니라 동대표의 공동재산이 되는 걸까?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집합건물의 경우에는 구분소유자로 구성된 관리단이라는 개념이 존재해 이 관리단이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반면에 아파트의 경우에는 입주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입주자단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주자단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입주자단체가 재산을 소유할 수 없고,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입주민들이 형성한 재산은 주인 없는 재산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주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봐도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다. 제일 좋은 방법은 공동주택관리법에 정면으로 입주자단체의 개념을 규정하고, 아파트의 재산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재산이 아니라 입주자단체의 재산이며, 입주자들의 공동재산(총유재산)이라고 규정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입주자단체의 개념이 인정되지 않으며, 입주자단체를 인정하자는 논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법 개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방법이 쉽지 않다면 입주자단체가 자신들의 재산을 입주자대표회의에 신탁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즉 입주자들이 자신들의 대표로 동대표를 선출하고, 그 동대표들에게 입주자들의 공동재산을 신탁한 것으로 보는 방법도 있다. 동대표들은 아파트 재산을 공동소유 하지만, 신탁받은 재산이므로 이를 신탁의 취지에 맞게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방법이 현 상황에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일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현실이 잘 작동한다면 개념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초가 약하면 더 튼튼하게 쌓을 수 없고, 더 높게 쌓을 수 없다. 더 멀리 갈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형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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