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기획 시리즈 - 관리 현장 옭아매는 사업자 선정지침 3

문제점 많은 사업자 선정지침
합리적인 가이드라인 제공하되
입주민 자율적 선택에 맡겨야

[아파트관리신문DB]
[아파트관리신문DB]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본지는 2024년 신년을 맞아 공동주택 입주민, 관리소장, 관리업체 등 관리업계 모두가 “틀렸다”고 말하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 대해 들여보기로 하고 지난 2회에 걸쳐 선정지침 제정 배경 및 변천 과정, 관계자들이 말하는 주요 문제점들에 대해 살폈다. 1, 2회에서 밝혔듯 주택관리업자 선정지침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입주민 선택권도, 관리업계 성장 기회도 빼앗아가며 관리현장을 옭아매 왔다.

관리비리 차단을 이유로 제정됐지만 지난 13년간 관리업계가 많이 자정됐고 실제 선정지침의 효과는 거의 없다시피 한 만큼 문제점 투성이인 선정지침을 더 이상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자율경쟁으로 업계 발전토록 해야”

본지가 그동안 짚어온 관리업자 선정지침의 문제점은 ▲일률적인 지침 강제로 단지 다양성 및 입주민 자율성 훼손 ▲적격심사제 표준평가표의 낮은 변별력 ▲사업제안 10점으로 가려지는 사업자 선정 ▲사업제안 평가의 합산 방식으로 인한 다수 선택과 어긋나는 결과 ▲최저‘가격’낙찰제가 아닌 최저‘이윤(수수료)’낙찰제로 유도 ▲저가 경쟁으로 인한 비현실적 위탁관리수수료 양산 ▲관리업체 성장발전 저해 ▲같은 점수일 시 최저가 업체, 같은 최저가일 시 추첨으로 업체 선정토록 해 입주민 선택권 제한 등이다.

이렇듯 문제가 많은 선정지침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간소화 및 개정, 나아가 폐지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관리업계 발전과 입주민이 단지에 맞는 업체를 선택할 권리, 질 높은 주거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위해 반드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러 문제점에 대해 하나씩 개선해 나가기보다는 더 이상 지침 준수를 강제하지 말고 가이드라인으로 제공해서 필요시 입주민들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주택관리협회 조만현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은 주거시장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갈등관계만 양산하고 있지 않은지, 주택관리 서비스가 규격화된 낮은 수준의 서비스로 방치되도록 하고 있지 않은지 연구가 돼야 한다”며 “자율경쟁을 통해 관리업체들이 특화된 전문성을 키우며 발전할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 사업자 선정지침은 폐지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공동주택관리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 세미나’에서 “선정지침은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체결된 계약내용에 대한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문제가 있고 입주민 관리서비스 욕구 상승에 따른 주택관리업자의 창의적인 관리 서비스 제공 의지를 위축시킨다는 문제가 있다”며 “사업자선정지침의 명확한 위반이 아니고 업체 선정 절차의 투명성이 확보될 경우, 개별 공동주택 사정에 따른 선택의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리업자 선정지침은 관리업계에서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반대하는 지침이다. 큰 기업은 진입장벽이 너무 낮고 변별력이 없다고, 작은 기업은 진입장벽이 높다고 호소한다. 공통적으로는 너무 세세하게 규정하는 바람에 영업과 기업 운영이 힘들다고 말한다.

창립 3년을 맞은 신생관리업체 A사 대표는 “제한경쟁입찰의 적격심사제 시 5년간 5개 단지를 관리한 사업완료실적이 있어야 관리실적 항목 만점을 받을 수 있는데 신생업체는 신용평가 등급도 뒤처지고 기술인력과 자본금 등도 부족해 실적을 쌓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주택관리협회 회원사 중 50위권에 있는 B사 대표도 “단지들이 입찰공고를 낼 때 자본금 10억원 이상, ‘일정 규모’ 이상의 단지 실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규모가 작은 업체는 접근조차 할 수가 없다”며 “사업자 선정지침은 영세업체들이 영업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제일 큰 장애물인 만큼 사업자 선정 기준을 법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은 업체라도 입주민들이 원한다면 관리를 맡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후 불만족스러우면 선정기준을 올리면 된다. 이렇게 작은 업체들에도 기회를 줌으로써 규모가 작더라도 관리를 잘하는 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내 한 아파트의 주택관리업자 입찰 공고문 내용. 제한경쟁입찰을 통해 자본금 10억원 이상, 최근 3년간 1000세대 이상 공동주택 5개 단지 이상 완료실적을 입찰참가 자격으로 요구하고 있다. 영세 관리업체들은 이러한 참가자격 제한이 입찰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며 사업자 선정지침으로 인한 영업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서지영 기자]
서울시 내 한 아파트의 주택관리업자 입찰 공고문 내용. 제한경쟁입찰을 통해 자본금 10억원 이상, 최근 3년간 1000세대 이상 공동주택 5개 단지 이상 완료실적을 입찰참가 자격으로 요구하고 있다. 영세 관리업체들은 이러한 참가자격 제한이 입찰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며 사업자 선정지침으로 인한 영업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서지영 기자]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선정지침으로 인해 주탁관리산업이 10년 정도는 후퇴했다고 본다. 선정지침이 아니었으면 능력 있는 회사들이 제대로 성장해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전문성을 함께 키워갈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평가 변별력 제고 등 대안 제시

선정지침은 입주민들이 원하는 업체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 큰 문제로 꼽힌다. 아파트는 단지마다 규모도 특성도 또 입주민들의 선호와 취향도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지침을 둘 것이 아니라 입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선정기준을 세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체들의 요구가 다양하고 입주민들도 다양한 관점에서 선택하는데 기준이 하나인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또 적격심사제에서 최고점을 받은 자가 2인 이상인 경우에는 최저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낙찰자로 결정하고, 가격도 동일한 경우에는 추첨으로 낙찰자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는 점이 입주민 선택권을 해치고 있어 이 경우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통해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아울러 “선정지침에서 표준평가표와 관리규약에서 정한 평가표 가운데 선택토록 하고 있으므로 아파트 입주민들도 표준평가표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각 단지 사정에 맞는 평가표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정부는 적격심사제의 표준평가표를 다시 변별력 있게 개선하는 한편 표준평가표 아래의 비고는 오히려 변별력을 없애므로 삭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개선 방향으로 사업제안 평가에서 동대표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 평가점수 합산이 아닌 다수의 선택 순서에 따라 점수를 배분토록 해야 하고, 입찰가격은 위탁관리수수료가 아닌 주택관리업자의 도급용역비 전체가 돼야 한다는 점 등이 제시된다.

무엇보다 단지의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을 존중해 업체 선정 기준에 있어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되 촘촘히 관여하지 않고 입주민들의 선택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징벌성 규제…폐지해야”

한편 사업자 선정지침은 공동주택에 내려지는 과태료 처분의 절반이 선정지침 위반에 따른 것일 정도로 지자체 과태료 남발의 근원이 되고 있어 관리소장들에게도 큰 골칫거리로 꼽힌다.

이에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서도 선정지침의 간소화 또는 개정,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하원선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회장은 “입찰무효사유가 너무 많고 입찰공고가 조금만 잘못 돼도 민원이 발생하고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며 “무엇보다 사업자 선정지침은 전문가 집단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업체, 관리사무소장을 근본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부정을 저지를 집단으로 보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 간소화나 개정보다는 효력기간에 따라 2026년 6월 30일 폐지되도록 해야 한다. 사업자 선정지침 대신 국가계약법에 따르도록 해 큰 틀 안에서 가격협상도 가능하게 하는 등 단지가 재량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박병남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서울시회장은 “공동주택은 단지마다의 특수성에 맞게 운영돼야 하는데 지금은 선정지침에 따라서 하지 않으면 과태료 등 처분을 받게 된다. 규제가 너무 강해 공동주택관리법보다 더 위에 있는 상위법 노릇을 하고 있다”며 “징벌성 규제인 선정지침은 폐지하고 가이드라인 정도로만 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 회장은 “관리비리는 선정지침으로 인해 줄어들었다기보다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고 국민 정서도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적으로 부정부패가 없어진 것”이라며 “국토부도 이제는 국민 수준을 믿고 선정지침을 폐지해 자율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정부의 주택정책과 관련해 “내 집, 내 재산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국가가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입주민들이 내 아파트를 관리할 업체를 선택할 권리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