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기획 시리즈 - 관리 현장 옭아매는 사업자 선정지침 1

 

한국주택관리연구원 강은택 연구위원이 지난해 발표한 ‘공동주택 과태료 부과 실태 및 개선 방안 연구’라는 논문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공동주택관리법 과태료 처분을 분석한 결과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위반으로 인한 과태료 처분이 전체 과태료 처분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강 연구위원은 “주요 위반 행위가 일부 특정 조문에 집중됐다는 사실은 해당 조문을 관리 현장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있었던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6명의 후보도 모두 사업자 선정지침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했다. 그만큼 공동주택관리업 종사자들이 사업자 선정지침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에 본지는 신년 기획 특집으로 3회에 걸쳐 사업자 선정지침의 제정 배경을 살피고 실태와 문제점을 알아본 뒤, 개선과 보완 방법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아파트관리신문=김선형 기자] 1998년 서울지검 서부지청은 방수·도색 공사와 관련해 뒷돈을 받은 아파트 동대표 12명을 구속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서부지청의 수사를 언급하며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바로 이런 수사를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러자 이듬해인 1999년 아파트 비리를 둘러싼 대대적인 경찰 수사가 개시됐다. 

약 2달간의 단속 끝에 당시 전국 아파트 8864개 단지 가운데 1996개 단지에서 불법행위가 발견됐다. 비리 관련자는 5838명. 147명이 구속되고 5691명이 입건됐다. 피해액 규모는 170억원이었다. 입건된 사람 중에는 관리소장이 1368명으로 가장 많았고 아파트 동대표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시공업자, 관리사무소 직원이 뒤를 이었다. 당시 경찰은 “단일 일반범죄 사건으로 국내 최대 규모”라고 발표했다. 

이후 각종 언론에서 아파트를 둘러싼 입찰 비리와 취업 비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아파트 관리에 관한 관심도 높아져 갔고 관련 민원도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7월 정부는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리를 근절하고 관리비를 절감하겠다며 ‘주택관리업자나 아파트 공사 관련 용역 사업자를 선정할 때 경쟁입찰 후 낙찰 방법은 반드시 최저낙찰제 도입할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을 고시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물가 안정화라는 정책 목표에
관리비 인하에만 초점 맞춰

최저낙찰제는 이름 그대로 공사나 물품 납품 입찰 과정에서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입찰자를 낙찰자로 선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건설업계 등에서는 최저낙찰제가 덤핑입찰 및 그로 인한 공사의 품질 저하를 유발한다는 비판을 제기해 왔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부실 공사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최저낙찰제에 대한 비판이 더욱 커졌고 한국의 시설 공사 낙찰제도에는 적격심사제나 최저낙찰제에 저가심의제를 가미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부작용이 널리 알려졌던 제도인 만큼 정부가 사업자 선정지침에 경쟁입찰을 도입하면서 낙찰 방법을 최저낙찰제로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사업자 선정지침 제정에 참여했던 정부 실무자들도 ‘낙찰 방법은 반드시 최저낙찰제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던 듯하다. 사업자 선정지침이 고시되기 약 4달 전 국토해양부 주관으로 개최된 ‘공동주택관리 선진화 방안 연구 공청회’ 자료를 살펴보면 ‘공동주택의 대규모 단지화, 고층화 진행으로 공동주택의 관리 및 주요 부위 유지 보수 전문성 제고’ 등의 과제를 제기하면서 “각종 계약과 주택관리업자 위탁관리 계약 및 기간의 경우 관리규약에 따라 정하고 있어 계약 과정의 담합 및 금품제공 등의 비리에 따라 입주자 간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있으므로 주택관리업자 및 각종 용역 계약 때 경쟁입찰의 방법으로 선정토록 한다”는 등의 내용만 있을 뿐 최저낙찰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10년은 고유가라는 외부 요인에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과 고환율로 물가가 치솟기 시작한 해다. 이에 정부는 52개 물가지수 품목을 선정해 특별관리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아파트 관리비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파트 관리비와 주거비도 이른바 MB물가지수라고 불렸던 정부의 특별관리 52개 물가 관리 품목에 포함됐다.

박병남 당시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사무총장(현 대주관 서울시회장)은 “최저낙찰제는 이미 부작용이 널리 알려져 사업자 선정지침과 관련된 협상 과정에서 다른 방식들이 논의됐고 당시 실무진들 사이에서는 유의미한 합의가 이뤄졌다”며 “그러나 정부의 특별관리 52개 물가 관리 품목에 아파트 관리비가 포함돼 있던 것이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사실 아파트 관리비는 물가의 영향을 받는 품목이지 물가를 움직이는 품목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 정책상 아파트 관리비가 입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이른바 MB지수에 포함된 것이다. 결국 실무진들의 합의는 정부의 더 윗선에서 ‘최저낙찰제가 아니면 아파트 관리비가 상승할 수 있고 물가지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강한 질책을 받고 반려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결국 낙찰 방법은 관리사무소장과 주택관리업계는 물론 입주민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저낙찰제로 결정됐다. 최저낙찰제가 포함된 사업자 선정지침 고시 1달 뒤, 경찰은 마치 이 보란 듯이 아파트 위탁관리와 용역업체 선정, 관리소장 채용을 놓고 11억원대의 금품이 오갔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업체 임직원과 아파트 관리소장, 입대의 회장 등 79명이 적발됐다.

업계는 경영난, 소장은 구직난
입주자는 업체 선택권 박탈

많은 관계자가 우려를 표했던 만큼 부작용이 나타나는 데는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본지가 사업자 선정지침이 고시된 지 약 3달 후인 2010년 10월부터 12월까지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게시된 전국 아파트 주택관리업자 선정 관련 낙찰 결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경쟁입찰 가운데 36%가 1㎡당 월 수수료가 1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PA아름다운관리 강창원 대표이사는 “사업자 선정지침 제정 이전의 위탁관리수수료는 통상적으로 평당 30원 정도 수준이었다. 1㎡당 10원 정도 되는 셈”이라며 “그러나 단지 규모나 제공 서비스에 따라 위탁관리수수료를 50원, 70원씩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입찰공고에 명시된 사항들을 과연 이 가격에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법에서 최저낙찰제를 강제하고 있어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를 선정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주요 언론에서도 사업자 선정지침 제정 후 관리 관련 민원이 오히려 50% 가까이 늘었다며 그 원인으로 최저낙찰제에 따른 1원 또는 0원 입찰을 문제로 삼았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가 모두 1원 또는 0원을 제시하게 되면 입대의는 사실상 리베이트 액수에 따라 업체를 선정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며 이렇게 비용도 받지 않고 아파트 관리권을 따낸 업체는 손실 보전을 위해 아파트 관리소장 임명 과정에서 뒷돈을 챙기고, 그렇게 관리소장에 임명된 주택관리사는 상납한 돈을 메꾸기 위해 아파트 공사 용역업체 선정 과정에서 또 뒷주머니를 차게 된다는 것이다.

주택관리사보는 1000만원, 경력 3년이 넘는 주택관리사는 500만원을 입대의나 관리업체에 바쳐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보천사오백’이라는 말이 주요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2010년 사업자 선정지침 제정 이후부터다.

주택관리업 사업자, 주택관리사, 입주민 그 누구도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관련자들은 물론 주요 언론으로부터도 수많은 비판을 받은 사업자 선정지침은 2012년 9월 11일 첫 개정과 함께 적격심사제를 도입했다.(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

관리 전문성 향상이라는
제도 개선 취지 사라져

적격심사제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평가 항목의 변별력이 없어 사실상 최저낙찰제와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다음 회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2012년 적격심사제가 도입된 후 지금까지 사업자 선정지침은 14차례 개정됐으나 정부는 입찰가격 외에 관리 능력을 통한 변별력을 두는 것에 소극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2021년 국토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업자 선정지침 개정을 추진한다. 담합을 유발하는 아파트 보수공사·용역 입찰제도를 개선한다는 이유였다. 내용은 실적 기준을 낮춤으로써 더 많은 중소업체가 공동주택 공사·용역 시장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공정위와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아파트 보수공사·용역은 업무 난이도가 높지 않고 유사한 성격의 작업이므로 많은 공사·용역 경험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업무 수행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개정에서는 공사 사업자 선정과 용역 등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적격심사제 표준평가표뿐만 아니라 주택관리업자 선정을 위한 적격심사제 표준평가표의 실적 기준도 같이 변경됐다. 결국 정부는 주택관리업에 대해 별다른 변별력이 없는 영세 사업이고 어떤 업체가 맡게 되든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처음 사업자 선정지침이 제정되기 전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제도 개선의 목적에 대해 공동주택 관리와 주요 부위 유지 보수 전문성을 향상하고 조기 노후화에 따른 국가적 자원 낭비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사업자 선정지침의 제정 과정과 지금까지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과연 그 목표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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