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부대표 김미란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부대표 김미란 변호사

아파트 관련 법적 분쟁을 주로 다루며 경력을 쌓다 보니 변호사의 전형적인 업무라 할 수 있는 송무와 자문 외에도 강의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많다.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입주자대표회의 운영 교육을 비롯해 주택관리사들의 직무교육, 입주민을 상대로 한 시민교육 등 형식이나 교육 대상은 천차만별이지만 각별히 신경을 쓰며 정을 쏟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의는 심각한 분쟁 상태를 직면해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관련 법령과 제도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다툼 없이 슬기롭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팁이나 알아두면 좋을 법률 상식을 제공하는 것이라 송무와 자문에 비해 훨씬 유연하고 활기찬 상태에서 진행된다. 강의는 강단에 서게 된 변호사가 일방적으로 자기 지식이나 경험을 내어놓기만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강의 과정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질문들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현실감각을 일깨우고, 현안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맡겨진 사건을 접했을 때와 달리 수강생들의 질문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고, 유용하다 생각되는 조언을 드리며 변호사 역시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게 된다.

지난달 공동주택 관련 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들로 구성된 공동주택법률학회와 충남아파트공동체문화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한 제1회 충남 아파트 법률학교가 5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첫날 개강식과 1교시 특강을 위해 천안으로 출발할 무렵 한 명의 수강생으로부터 꽤 묵직한 이메일 질의를 받았다. 질문은 위수탁관리계약의 법적 성질에서 비롯된 용역비 정산 분쟁, 아파트 시설 하자로 인한 안전사고 발생 시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주체 등 다양하면서도 늘 있어 왔던 현장의 궁금증들로 채워져 있었다.

위수탁관리계약의 법적 성질이 위임이냐 도급이냐에 따라 실제로는 지급되지 않은 용역비를 정산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없는지 결론이 갈린다. 아파트에서의 안전사고 발생 시 관리주체와 입대의 중 누가 최종적인 책임을 지게 되는지는 직접·간접 점유 관련 법리가 문제된다.

이 모든 질의에 단 하나의 정답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그러나 가장 정확한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이 그때그때 다른 이유는 일관성 없이 아무렇게 판결해서는 결코 아니다. 법원은 관련 법령의 합리적 해석과 일관된 법리를 토대로 판단해 결론을 낸다. 그렇다면 같은 법리를 적용하고도 왜 사건마다 승패가 갈리고 결론이 다를까?

법원이 증거를 토대로 확정한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판사는 신이 아니므로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증거에 의해 실체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출된 증거만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파악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판단을 포기할 수 없고, 법관의 마음대로 사실관계를 확정해서도 안 된다.

증거가 없을 때 이를 확정하는 기준은 바로 입증책임의 원칙이다. 입증할 책임이 있는 자가 증거가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으로 증명하지 못한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사실관계를 확정한다. 그러니 법률가로서 드릴 수 있는 첫 번째 조언은 무조건 증거를 챙기라는 것이다.

두 번째 조언은 재판 결과의 승패와 무관하게 사건에 적용된 법리를 숙지하라는 것이다. 아는 자가 가장 무섭다.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쟁을 피하려면 갈등의 여지가 있는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부분을 거둬내야 한다. 그러려면 법원의 태도와 법리를 꿰고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조언은 법리를 알고 증거를 잘 수집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도 현실의 무게가 있다는 것이다. 위탁관리업체가 정산 의무를 면하려면 도급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그러나 관리현장을 수주하는 을의 입장에서 정작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의 문제는 수립된 제도와 법률가의 법 해석 너머 좀 더 깊은 문제다.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야 할 묵직한 과제를 모두가 안고 있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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