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 신민호 사무국장
성북구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 신민호 사무국장

나의 아버지는 사립학교 경비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아버지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부모님(할아버지, 할머니)은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시고 어린 나이에 이북 끝쪽에 있는 탄광에 끌려가 고초를 겪다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일본 탄광으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으셨다. 한국인 근로자가 탈출하다 잡히면 한국인을 모두 모아놓고 채찍으로 죽지 않을 만큼 매질을 해 이들에게 공포심을 줘 다시는 도망갈 엄두를 못 내도록 했다고 한다. 해방 후 군에 자원입대해 8년간 군대 생활 중에 6.25전쟁으로 부상을 입고 전역해 결혼한 후 5남매를 낳으셨다. 시골에서는 5남매 교육이 어렵다고 무작정 서울로 이사와 온갖 고생을 하다 사립학교 경비원으로 취직한 것이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학교 입구의 경사면이 길어 눈을 모두 치우고 나면 몸살이 날 정도로 힘들어 했고 나도 가끔 새벽에 눈을 치우려 학교에 가곤 했다.

경비원 작은 급여로 생활비와 교육비 충당이 어려웠지만 5남매 대부분 대학까지 졸업했다. 어머님도 아버님 못지않게 고생을 많이 했다. 현재 어머님은 90세로 간신히 보행기로 집안에서만 생활할 정도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태어난 이들은 산업현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이들이 대부분이며, 그들 덕에 우리나라가 3만불 이상 고소득의 선진국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오래전 부모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강원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던 터였다. 이후에도 여러 번 기회가 있었지만 부모님과 같이 여행을 가보지 못했다. 제대로 된 해외여행 한번을 못 보내드려 지금도 후회로 남는다. 어머님과 이제라도 여행을 하고 싶지만 몸이 불편하니 나들이하기 힘들어 하신다. 이렇다 보니 어머님만 두고 여행을 다닐 수 없어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후회하지 않도록 내 부모님과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만들기 바란다.

공동주택에 근무하는 경비원 대부분은 60세 이상의 고령자들로 퇴직이나 은퇴 후에도 생계를 위해 경비원으로 취업한 이들이 많다. 최근에 접한 언론 보도에서 경비원들도 휴가를 가고 싶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경비원들은 휴가를 낼 엄두를 못낸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로 마음대로 휴가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주택의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조금만 배려해 준다면 쉬는 날을 포함해 3~5일 정도는 휴가를 갈 수 있다. 공동주택에서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이들을 배려해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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