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익 소장의 조경더하기 17

‘억새’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어릴 적 억새잎에 손을 베어 울던 적도, 반바지 차림으로 산길을 나섰다가 팔다리가 온통 억새 생채기로 쓰라린 적도 있었다. 키도 크고 억세기로도 유명한 참억새에 대한 산골 소년의 아스라한 추억이다.

그리고 바람 불어 좋은 가을날, 하얀 물결 일렁이던 억새의 추억도 있으니, 명성산과 하늘공원이다. 명성산은 자연이 빚은 빼어난 작품으로 한참을 땀 흘려 올라가야 풍경을 내어주지만, 지척에 있는 하늘공원은 인공미가 가미된 넓은 초원을 이루고 있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다.

가을의 신사 억새꽃은 볏과 여러해살이풀로 어느새 우리 곁에 하늘거리고 있다. 억새는 단순한 서정성 강한, 마치 농익어가는 수필을 읽는 듯한 정서로 가득한 풀이다. 여름철 푸르른 강건함과 가을철의 매혹적인 은빛 물결이 여느 관목보다도 더 아름다운 품세를 자랑한다.

참억새
참억새

억새는 요즘 들어 조경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식물로 조경용이나 단독 식물로도 추천할만하다. 우리가 관리하는 단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참억새보다는 개량된 가족들이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가을은 물론 겨우내 입주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린라이트
그린라이트
딕시랜드
딕시랜드

참억새의 특징은 줄기는 직립성이 강하고 병해에 강하며, 꽃은 갈색을 띠고 만생종으로 늦게 핀다. 가장 널리 알려진 품종 중에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모닝라이트와 잎의 노란색이 매력적이지만 바람에 잘 쓰러지며 직립성이 약한 딕시랜드, 키가 가장 작은 리틀키튼, 가장 먼저 피는 아다지오, 늦게 피며 직립성이 뛰어난 그린라이트, 키가 큰 스트릭투스, 코스모폴리탄, 잎과 줄기가 가장 붉은 퍼플폴, 사라반드, 제브라 등이 있다.

제브라
제브라

공원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여 보는 이들의 가슴도 러블리한 분홍억새라 불리는 핑크뮬리와 통통한 모습에 이름도 이쁜 수크령은 가을철에 한층 멋스러움을 더한다. 구별해야 할 것은 억새와 갈대의 차이다. 쉽게 말하자면 억새는 뭍에서 자라고, 갈대는 습지에서 자란다고 보면 된다. 물론 키나 색깔, 꽃송이 등의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다.

핑크뮬리
핑크뮬리

‘억새’하면 떠오르는 곳이 한군데 더 있다. 구리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인데, 다른 능과는 달리 봉분이 억새로 덮여 있다. 이것은 태조의 유언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를 가져와 덮은 것이라고 하는데, 조선을 세웠지만 말년에 아픈 가족사를 보며 태조의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수크령
수크령

수크령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풀(수크령)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서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의 ‘결초보은(結草報恩)’. 내게도 그런 분이 계셨으니, 나도 누군가의 결초보은의 대상이 되고 싶다고! 소장으로든 아니든 상관없이….

※ 관리 포인트
- 기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으며, 토양을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 모종 식재 후 3년 정도 지나면 가장 아름답다.
- 묵은 줄기는 겨우내 드라이 정원으로 놔뒀다가 2월 하순쯤 지상부를 잘라주면 된다.
- 모닝라이트는 여름철 잎도열병이 발생하기 쉬우니, 초기에 세 차례 정도 방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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